[현장 그곳&] “멀더라도 횡단보도를 이용할 수밖에 없네요”…교통약자에겐 ‘그림의 떡’ 보도육교

27일 오후 수원시 고색초등학교 앞 육교에서 한 휠체어 장애인이 계단을 오르지 못한 채 멈춰서 있다. 경기지역에 설치된 440개의 육교 가운데 96개가 승강기ㆍ경사로 등 교통약자를 위한 편의시설이 설치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 개선이 요구되고 있다. 김시범기자
27일 오후 수원시 고색초등학교 앞 육교에서 한 휠체어 장애인이 계단을 오르지 못한 채 멈춰서 있다. 경기지역에 설치된 440개의 육교 가운데 96개가 승강기ㆍ경사로 등 교통약자를 위한 편의시설이 설치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 개선이 요구되고 있다. 김시범기자

“저희같은 교통약자들에게는 그저 ‘그림의 떡’이죠”

27일 오전 10시께 찾은 군포초등학교 앞 육교. 이 육교 주변에는 교통약자를 위한 승강기도, 경사로도 설치돼 있지 않았다. 교통약자에겐 이 육교는 이용이 불가능한 단지 길을 점유한 장애물일 뿐이었다.

이준영씨(80)는 120여m 떨어진 횡단보도와 육교를 번갈아보다 결국 육교를 선택했다. 한 손은 손잡이를, 다른 한 손에는 지팡이를 들고 가파른 계단을 오르는 이씨의 모습은 위태롭기 짝이 없었다. 휘청이며 33개의 계단을 올라선 그를 맞이한 건 내리막길이었다.

같은 날 오후 1시께 용인시 수지구 풍덕천동 수지성당 앞 육교. 왕복 6차선 도로를 관통하는 약 39.3m 길이의 육교 역시 교통약자를 위한 배려는 어디에도 없었다.

육교 이용을 시도하려던 80대 할머니는 가파른 경사의 계단을 한두발짝 시도하다, 이내 보행기를 힘겹게 밀며 100여m의 거리에 떨어져 있는 횡단보도를 향해 발길을 옮겼다.

오후 1시께 수원 고색초등학교 인근 육교도 상황은 마찬가지. 노인들과 장애인들을 위한 어떠한 편의시설도 없이 설치된 5m에 달하는 육교는 교통약자들에게는 오를 수 없는 산일뿐이었다.

보행자의 편의를 위해 설치된 경기도내 육교 10곳 중 2.5곳이 교통약자를 위한 편의시설 없이 방치되고 있다.

이날 경기일보 취재 결과, 경기도내 설치된 440개의 육교 가운데 96개(24.67%)가 승강기ㆍ경사로 등 교통약자를 위한 편의시설이 설치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교통약자증진법 시행규칙에 따르면 육교 설치 시 주변 30m 이내 횡단보도가 없을 경우 교통약자의 편의를 위해 완만한 경사로 또는 승강기를 함께 설치해야 한다. 그러나 해당 법이 제정된 2010년 6월 이전에 설치된 육교에는 적용되지 않아 교통약자들이 불편을 겪고 있다.

전문가들은 승강기나 경사로 설치가 어렵다면 육교 인근에 횡단보도를 설치해 교통약자들의 이동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형모 경기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육교의 계단 경사가 워낙 가파르기 때문에 노약자나 장애인들이 이용 시 큰 부상의 염려가 매우 크다”며 “교통약자를 위한 편의시설 설치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육교 인근 에 추가로 횡단보도를 설치해 이들의 안전을 책임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군포시 관계자는 “현장 점검 결과 군포초 앞 육교가 교통약자들의 이용이 불편한 건 사실”이라며 “다만 승강기 설치 공간이 나오지 않아 개보수가 어려운 상황이라 다른 방안을 모색 중”이라고 말했다. 용인시 관계자도 “다각적인 분석을 통해 육교 이용 불편에 대한 대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장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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