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 한 줌도 사치인 고시원 이야기] 햇빛 한 줌이 사치인 고시원 생활기

눈을 떠도 칠흑이다. 오로지 휴대폰만이 바깥 상황을 짐작케 한다.

3평 남짓의 공간은 한 줌의 햇빛마저 허용하지 않는다. 인사 대신 침묵이 예의인 곳, 기자의 집은 ‘고시원’이었다.

35개의 방이 쪼개져 있는 수원시 장안구의 한 고시원. ‘달그락’하는 소리가 아침을 알린다. 누군가는 전날 ‘나만 빼고 잘 돌아가는 세상을 원망’하며 마신 술을 깨기 위해 정수기를 찾고자, 누군가는 일상의 공허함 만큼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한 계란 프라이를 만들고자 공용주방으로 향한다.

공용주방에선 나름대로 규칙이 있다. 대면 접촉에 몸서리치는 이들 때문에 눈치 게임 끝에 한 사람이 빠지면 또 다른 사람이 공간을 차지하는 소위 ‘밀어내기 방식’이 그것이다. 고시원 사람들이 대범함 대신 눈치밥을 먹고 사는 것엔 이곳의 규칙이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는 생각이 든다.

굳이 알 필요 없는 각자의 사정은 빼곡하게 들어서 방음마저 안되는 방에서 알 수 있다. 얼굴 대신 목소리로 누군가의 삶을 기억하는, 정말 비상식적인 공간.

눈치는 고시원 밖을 나서는 순간까지 이어진다. ‘쾅’ 하고 닫히는 신발장을 ‘살살’ 달래며 조심스럽게 구두를 꺼낸다.

건물 밖으로 나서면 기자의 집은 더 이상 고시원이 아니다. “그래도 난 어엿한 직업이 있으니까”라며 스스로 대견해 한다.

그러면서도 누군가로부터 “어디 사냐”라는 말에 ‘고시원’이라는 대답은 쉽게 입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고시원에 사는 게 죄는 아닌데도 말이다.

흡연실에서 통화하는 30대 남성의 이야기가 가슴에 턱 와닿는다. “어머니, 조금만 있다가 나갈거예요. 창피하니깐 누나한테는 얘기하지 말아 주세요”

일과를 마치고 다시 고시원으로 돌아왔다. 한밤 중 ‘타닥타닥’거리는 노트북 소리를 자판 위 키스킨으로 숨 죽이게 한 채 조심스럽게 캔맥주를 ‘치익’ 따고 하루를 치하한다.

하지만 만취한 옆방 남성의 구토와 신세 한탄 소리는 밤잠을 설치게 한다. 햇빛 한 줌과 바람 한 점 관통하지 않은 고시원에서 말린 옷은 퀴퀴한 냄새를 풍겨 신경을 더 날카롭게 만든다. “내가 왜 이곳에 있지?”라는 생각을 시작으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들이 밤새 이어진다.

35일간의 생활을 끝내고 고시원을 나선다. 뜨거운 7월의 햇빛이 더없이 따뜻하게 느껴진다.

코로나19가 대한민국을 뒤덮은 2021년 여름. 갖가지 이유로 사회와 단절된 수많은 군상들이 고시원에 살고 있다. 언젠가 비춰질 한 줄기 희망의 빛을 기약하면서 말이다. 이들이 다시 양지의 향내를 맡으러 나오게 하는 것도 동시대를 사는 우리들의 몫이다.

경기일보DB

이정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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