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 신호등 앞에서
볕가리개 하나 믿고서
40도의 열기 속으로 진입한다
헉헉대며 걷는 아스팔트 위의 사람들
사하라 사막, 빙하, 오아시스, 낙타, 에스키모, 펭귄
나는 발걸음마다 단어 하나씩을 외우며 걷는다
플라타너스 초록 잎도 지쳐 늘어지는데
그래도 끈질긴 매미들의 여름 찬가
땡볕에 맛이 오른 수밀도와 포도
노숙을 허락하는 그렇지, 맞아
위대한 여름
행인들 속에 끼어 횡단보도를 건넌다
오늘 내게도 할 일이 있고
지난겨울 추위에 그리워하던
그 여름의 거리가 펼쳐져 있지 않은가
이제 곧 낙엽을 밟을 때
나는 계절의 추억을 두르고
여전히 녹색 신호등 앞에 서 있을 것이다
한해경
이화여자대학교 음악대학졸업(바이올린 전공). <창조문예>로 등단.
시집 <꽃이 진 자리마다>.공저 <강물처럼 흐르다> <봄이 없다>
<수금을 울리다>. 창조문예문인회•이대동창문인회•한국기독교문인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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