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말 조선초의 문신인 문숙공 류사눌(1375∼1440)의 묘소다.
류사눌(1375~1440)의 자는 이행(而行), 본관은 문화(文化), 시호는 문숙(文肅)이다. 류사눌은 일찍 부모를 여의고 숙부 밑에서 학문에 힘써 경전에 밝고 문장에도 능했다. 특히 음악에도 조예가 깊어 예문관 대제학 재직시에는 악학제조를 겸하여 <아악보> 서문을 찬하기도 했으며, 세종 16년(1434)에는 <진작가사>를 찬하여 <제악부>에 싣는 등 박연과 더불어 아악을 정리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조선조 초기 16세 때 생원시에 합격했으며, 18세 때인 태조 2년(1393년) 식년 문과에 동진사(同進士)로 합격해 좌정언, 이조·병조정랑 등을 역임하고 태종 7년(1407)에 문과 중시에 병과로 급제해 사헌부 장령이 됐다. 중서사인(中書舍人)을 거쳐 경상도 도관찰사가 된 후 함경도 도순문사, 강원도 도관찰사 등을 거쳐 세종 5년(1423)에는 한성부윤이 됐다. 그 후 세종 10년(1428)에는 예문관대제학으로서 진하사가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세종 14년(1432)에 동지중추원사가 됐다.
문화재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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