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가 있는 아침] 길장미

6월의 담벼락은 샤넬 No. 5

거리의 장미들은

몸 전체로 향을 피워내는 법을 안다

불가리아 벌판에서 자라

손가락 긴 파리지엥의 귓불에서 증폭될

흑장미들은 모른다

마을버스의 승객들과 인사하는 법

가슴 속에 피어 종점까지 길게 향을 간직하는 법

장미의 마을에서는 소음도 향이 된다

코로나로 닫혀있던 학교 문이 장미의 계절에 열리고

꽃보다 향이 깊은 아이들은

아름다운 소음을 뱉어낸다

이야기를 먹고 자란 장미들은

사춘기의 하굣길을 훌쩍 키 크게 한다

그래서 길에서 자란 장미들은

뜨거운 햇살에도 시들지 않는다

울타리를 넘어온 장미에 취해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는 소녀가 스틸 컷이 되어버린 모퉁이

노선버스들은 장미 향을 담기 위해

빈 차로 왔다

 

 

 

최병호

1966년 전남 해남 출생.

고려대 국문학과.

열린시학 2021년 신인작품상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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