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공상과학의 시간

지난달 스타필드 하남에서 열렸던 경기콘텐츠진흥원의 문화기술전람회에서 백남준아트센터는 《공상과학예술가, 백남준》이라는 전시를 기획해 백남준의 텔레비전 로봇 작품들을 선보였다. 백남준을 부르는 여러 가지 수식어가 있지만 ‘공상과학예술가’라는 표현을 새롭게 사용한 제목이다. 전시된 것은 역사적 인물들인 칭기즈 칸, 슈베르트, 찰리 채플린, 율곡, 밥 호프를 여러 대의 텔레비전으로 로봇처럼 만든 작품들이다. 인공지능, 홀로그램, 가상현실 등 첨단 기술의 문화적 체험을 제공한 전람회에서, 아날로그 기술로 된 백남준의 TV 로봇 작품들은 자칫 유물처럼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백남준이 말했던 ‘공상과학’의 뜻을 안다면, 백남준의 로봇들은 지나가 버린 역사가 아니라 지금의 우리가 문화와 기술을 접목할 때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지 질문을 던져 주는 매우 현대적인 예술로 다가온다.

SF 소설이나 영화는 과학적이면서도 예술적인 상상력으로 아주 먼 미래의 세상을 그린다. 현재의 기술로는 불가능하지만 그럴 법한 미래가 실감 나게 그려지고 그 상상력이 실제 기술의 발전으로 이어지거나 소설, 영화 속 미래가 정말로 현실에서 이루어지면 우리는 그 상상력에 환호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백남준은 이 같은 공상과학이 과거의 시간을 향해서도 가능하다고 말하면서 이를 ‘네거티브 공상과학’이라고 이름 붙였다. 여기서 ‘네거티브’는 부정적인 의미가 아니라 양극과 반대되는 상태인 음극을 네거티브라고 하듯이, 미래가 아닌 과거를 향해 공상과학의 상상력을 투영한다는 뜻이다. 백남준은 우리가 이 네거티브 공상과학의 도움을 청해야 할 때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지난 이 년간 코로나를 겪으며 우리는 과거에 ‘일상’이라고 부르던 많은 것을 멈춰야 했으며, 예전 일상에서 너무 익숙해 미처 소중함을 몰랐던 부분들을 다시 깨닫게도 되었다. 미술관들도 코로나로 인해 가해진 제약을 타개하고자 메타버스 전시처럼 온라인 기술을 활용하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가운데, 미술관에 몸소 찾아와 주는 관람객의 존재가 얼마나 중요한지 오히려 배우게 되는 순간들도 많았다. 코로나 극복을 위해 모두가 힘을 쏟은 끝에 11월이면 마침내 일상의 회복을 위한 첫 단계가 시작된다고 한다. 이 회복은 그냥 원래대로 똑같이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원래’에서 우리가 놓쳤던 것들, 묵과했던 것들을 바로잡아 채우고 윤내는 일까지 포함해야 한다. 코로나 이전의 시간, 코로나로 멈췄던 시간, 그리고 이른바 ‘코로나와 함께’라는 시간들까지, 백남준이 말했던 공상과학의 상상력으로 되감아 본다면 그러한 회복을 위해 필요한 예술의 쓰임새, 기술의 모양새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김성은 백남준아트센터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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