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포들이여. 우리들은 단결하여 우리 조국을 위해 몸 바쳐 우리의 독립을 회복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들은 잔인한 일본인들의 통탄할 만한 악행과 횡포를 전 세계에 호소해야만 한다. 그들은 교활하고 또 잔인하며 진보와 인도의 적이다. 우리들은 모든 일본인과 그 스파이 앞잡이 및 야만의 군대를 쳐부수기 위하여 최선을 다 하여야 한다.” 1907년 11월 말 결성된 13도창의군이 국내외 한국인에게 보낸 격문이다.
13도창의군의 정식명칭은 ‘원수부 13도창의 대진’으로 고종황제의 밀지(密旨)를 받은 이인영과 허위, 이은찬 등 전국의병과 해산군을 합친 국민군(國民軍)이다. 원수부란 대한제국 황제 직속의 최고 군통수기관으로 고종이 대원수, 황태자(순종)가 원수가 된다. 13도창의군은 황태자였던 순종의 예하부대인 셈이다.
이 국민군은 총대장 이인영, 군사장 허위를 비롯해 황해도의 권중희, 충청도의 이강년, 강원도의 민긍호, 경상도의 박정빈, 전라도의 문태수, 평안도의 방인관, 함경도의 정봉준 등이 각 도의 대표로 참가했다. 서울 남산의 통감부를 치기 위해 12월까지 동대문 밖 양주 한강변에 1만명 집결명령을 내린다. 전국의 의병들은 서울로 향했지만, 기미를 알아챈 일본군에 발목이 잡힌다. 집결은 늦어지고, 총대장 이인영마저 부친상으로 낙향한다. 1908년 설날인 2월2일. 군사장 허위와 사령장 김규식은 감사군(敢死軍) 300명을 이끌고 동대문을 향해 돌진한다. 이들은 망우리고개를 넘어 동대문 문턱도 넘지 못하고 일본군의 반격에 서울진공작전은 실패를 한다.
창의군 24대진 1만 되는 군사들은 어디에서 집결했을까. 많은 기록에 동대문 30리 밖 양주(楊州)의 한강변이라는 증언만 있었을 뿐이다. 당시 붙잡힌 의병장들의 조서에도 비슷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그곳은 어디일까. 황태연 동국대 교수가 2017년 8월에 출간한 <갑진왜란과 국민전쟁>에 구리시 수택동 한강변이라고 아주 구체적으로 밝혔다. 십수년 응어리가 풀린 것이다.
이에 필자는 지난 2019년 3ㆍ1 만세운동과 임시정부 100주년을 맞아 역사적 사건 집결지인 한강변에 기념물을 설치하자고, 구리시에 제안했다. 시는 흔쾌히 받아들였다. ‘13도창의군기념사업추진위원회’를 결성했다. 2020년 5월 지원조례가 만들어지고, 10월 학술대회를 거쳐 12월26일 한강과 가까운 장자호수공원에 ‘원수부13도창의대군수택리집결지기념비’를 세웠다. 그리고 1년이 지났다. 13도창의군을 두루 알리고자 2차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시는 한말 서울탈환을 위한 1만 의병 집결 성지(聖地)이기 때문이다.
한철수 시인ㆍ구지옛생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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