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새해 벽두에 문득 매월당 김시습의 시 ‘사청사우(乍晴乍雨)’를 떠올린다. 사청사우는 ‘날이 개었다 비가 내렸다’ 한다는 뜻이다. 한 해를 여는 문 앞에서는 대개 밝고 행복한 이야기를 한다. 희망은 언제 들어도 반가운 말이다. 그러나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입에 발린 소리보다 좀 더 솔직한 이야기가 희망에 한 걸음 다가가는 덕담일 듯해 있는 그대로 세상 이야기를 하고 싶다.
사람 사는 곳은 어디에서나 바람 잘 날 없다. 어떤 분은 삶이 다 그런 거라고 말한다. 딱히 틀린 말은 아니다. 그렇게 살면 그렇게 살아가는 거려니 하겠으나 이왕이면 그 빈틈에 아름다운 꽃 한 송이라도 피우는 여유를 가진다면 더 향기로운 인생이 되지 않을까. 옥토만이 땅이 아니다. 바위틈을 비집고 나와 자라는 꽃도 있다.
코로나19가 창궐해 세 해째 우리 삶을 위협하며 괴롭힌다. 자영업을 하는 분들은 영업이 안 돼 생계를 위협받고, 평범한 시민들 가운데는 일상을 빼앗겨 우울증으로 힘들어하는 분들도 있다. 이 난국을 빠져나가야겠는데 어느 곳을 돌아보아도 당장은 딱히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힘을 모아도 모자랄 판에 정치하는 분들은 이런 현상이 보이지 않는지 서로 자리를 안 뺏기겠다며 싸움질만 한다. 국민은 어느 쪽이 나를 도와줄까 눈치를 보며 저울질해 보지만 어느 쪽도 쉬이 희망을 가져다줄 것 같지 않다.
잠시 개었다 다시 비가 오고, 비가 오다가 다시 날이 개는구나
하늘의 이치가 이러하거늘 하물며 세상의 인정이랴
나를 칭찬하던 이가 오히려 나를 헐뜯고
공명을 피하던 이가 다시 명예를 구하려 하네
꽃이 피고 지는 것을 봄이 어찌 상관할 수 있으랴
구름이 가고 오는 것을 산은 다투지 않는다
세상 사람들아, 모름지기 내 말 잘 새겨들으시오
즐겁고 기쁜 일을 평생 누리는 곳은 어디에도 없다오
- 매월당 김시습 ‘사청사우’ 전문
행복과 희망은 멀리 있는 게 아니라 내 가슴에 있다. 내 안을 못 보고 욕심스레 밖에다 산처럼 쌓는 행복은 크게 쌓일수록 빨리 무너진다. ‘즐겁고 기쁜 일을 평생 누리는 곳은 어디에도 없다오’ 하는 매월당의 시구처럼 평생 누릴 수 있는 행복은 밖에 있는 게 아니라 무너지지 않는 내 안에 있다.
한 편의 문학 작품이 이렇듯 가슴에 묻어둔 자신의 마음과 세상을 제대로 보는 눈을 만들어준다. ‘사청사우(乍晴乍雨)’를 음미하며 꽃이 피고 지는 내 안의 봄을 보게 되면 바위에서 피는 꽃도 볼 수 있다.
김호운 소설가ㆍ한국소설가협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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