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신사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모자 탑 햇은 한 양품점 주인이 조세정책에 항의하는 의미로 챙이 좁고 키가 높은 모자를 만들어 쓴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영국의 피트 내각은 세금을 거둬들이려고 비싼 모자를 소유한 사람들에게 모자세를 부과했다. 모자세를 내지 않으면 무거운 가산세를 물렸고 모자에 붙이는 증지를 위조한 사람은 사형에 처해지기도 했다고 한다.
러시아의 표트르 대제는 귀족들이 권위의 상징으로 기르던 수염을 깎게 하는 대신 수염세를 물렸다. 수염과 옷소매를 길게 늘어뜨리고 다니는 것이 못마땅해 수염 단발령을 내렸지만 귀족들의 반발이 거셌던 때문이다. 그러나 수염세가 도입되자 사람들은 너도나도 애지중지하던 수염을 깎기 시작했다니 권위나 전통보다도 세금이 더 무서웠던 것이다.
21세기에 들어와 지구촌에서는 방귀세 논란으로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에스토니아 정부와 유럽의 일부 국가들이 농가의 젖소에 이른바 방귀세를 물리기로 했기 때문이다. 왕정시대도 아닌 오늘날 소가 뀌는 방귀에 세금을 매기려 한 기막힌 속사정은 무엇일까. 소나 양처럼 되새김질하는 반추동물은 풀을 뜯어 먹은 후 저장과 되새김질을 통해 분해효소의 작용으로 섬유질을 소화시킨다. 이처럼 되새김질을 하는 반추동물들은 소화과정에서 발효를 일으키며 이들은 트림이나 방귀로 다량의 메탄가스를 배출한다.
메탄가스는 지구온난화의 원인으로 지목받는 이산화탄소보다 열을 잡아 가두는 온실효과가 21배가량 높다. 소나 양 등 축산계에서 배출하는 메탄가스를 모두 합치면 지구 전체 온실가스 발생량의 18%에 이르며, 국가로 치면 세계 3위 수준이다. 소 한 마리가 연간 배출하는 온실가스 배출량은 승용차의 1.5배에 달한다고 한다. 에스토니아는 전체 메탄가스 배출량의 25%를 소가 차지한다고 하니, 방귀세는 교토의정서에 따라 농업부문 배출가스 저감사업에 투입할 예산을 확보하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던 것이다.
‘소는 하품밖에 버릴 것이 없다’고 하며 우리 조상들은 소를 소중하게 여겼고 한 식구로 대했다. 그런데 하필 소의 하품과 방귀가 문제가 되고 있다. 인간의 탐욕으로 본의 아니게 방귀쟁이로 몰려 세금을 물게 된 소에게 인간으로서 계면쩍고 미안할 따름이다. 정작 방귀보다 더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하면서도 책임에는 미온적인 인간의 소비 양태가 변화되지 않는 한 인류의 지속 가능한 삶은 소가 웃을 일이다.
안동희 여주시 지속가능발전협의회 공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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