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여전히 개발연대의 성공 신화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다. 유능한 대통령 덕분에 초근목피로 연명하던 빈곤국이 중진국으로 발전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본도, 시장도 없었던 개발연대에는 대통령이 강력한 통솔력과 억압적인 정치 시스템을 기반으로 국가 주도의 경제성장을 할 수 있었다.
한국은 세계 10대 강국에 속하는 경제 선진국이 됐다. 선진국 가운데 대통령이 나서서 국가 주도의 경제성장을 하는 나라는 없다. 국가의 역할은 민간과 기업이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개발연대에서조차도 경제성장의 동력은 ‘대통령’이 아닌 부지런한 노동자와 기업들, 그리고 전 국민이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부는 시장경제를 보완하는 역할을 한다. 시장실패를 교정하고, 경쟁에서 낙오된 국민을 지원해 사회적 통합과 결속력을 높인다. 혈세를 자신의 ‘쌈짓돈’인 양 대통령이 마구 뿌린다고 경제가 성장하고 국민이 잘살게 되는 것이 아니다. 돈을 많이 벌어봐야 대통령의 치적을 위해 혈세로 걷어가면 일할 의욕이 사라진다. 국가 주도의 악순환이 되는 것이다. 국가는 불합리한 규제와 제도를 개혁하고, 법치를 확립해 투명하고 공정한 시장경쟁의 규칙을 만들면 된다.
4차 산업혁명과 디지털 전환이 급변하는 상황에서 국가 주도 경제성장은 더욱 불가능하다. 산업과 기술의 변화를 정부가 선제적으로 이해하고 따라잡기는 힘들다. 이윤을 창출하기 위해 생존 노력을 하는 민간부문과 시장만이 이러한 변화들에 대응할 수 있다. ‘유능한 경제 대통령’에 의한 국가 주도 경제성장은 중국식 사회주의 경제에서나 가능하다.
‘유능한 경제 대통령’의 이미지로 선택된 정치인이 이명박 전 대통령이었다. 그는 대기업의 CEO를 역임했고, 서울시장에 당선돼 주요한 업적도 남겼다. 국민은 ‘747(국내 경제성장률 7%·국민소득 4만달러·세계 7위권 선진대국)’ 구호 속에 이 전 대통령의 비도덕성, 부패 등의 비리 문제를 외면했다. 이 전 대통령이 우리 경제를 잘 이끌었는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민주주의 시장경제에서 대통령의 지도력이란, 유능한 전문가와 관료들을 움직이는 능력을 말한다. 대통령의 할 일은 열심히 노력한 사람에게 제대로 성과가 돌아가도록 공정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대통령이 없어도 유능하고, 좋은 기업들만 있으면 경제는 잘 운영되고 일자리도 창출될 수 있다. 민간과 기업이 경제 성장을 주도하는 주체이기 때문이다. 이들을 지원하기 위해 유능하고 실력 있는 정부가 필요한 것이다.
개발연대의 신화도 사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다. 사리사욕을 위해 혈세를 이용해 사업을 만들어 측근과 이익집단에 나눠주고 열심히 일하는 관료들을 폄훼하는 지도자는 국민의 삶을 풍요롭게 할 수 없다. 민주화와 산업화를 이룬 한국 사회는 이제 제대로 된 품격 있는 지도자를 필요로 한다. 인품과 도덕성을 겸비하고, 법치와 민주주의를 소중히 여기는 모두가 존중할 만한 대통령만이 민간과 기업 주도의 경제성장을 통해 국민의 행복을 달성할 수 있다.
김은경 경기연구원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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