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개혁 보고서] 수사 허덕이는 경찰, 현장 외면하는 조직

 

지난해 1월, 67년 만에 검경 역사상 최대의 변혁이 일어났다. 상대적으로 수혜를 입은 건 경찰로 보인다. 이른바 ‘1차 수사 종결권’을 확보했고, 자치경찰제라는 또 하나의 중대 변화를 통해 조직의 몸집을 부풀렸다. 그러나 본연의 임무인 수사에 대해서는 여전히 물음표가 달린다. 오히려 퇴보하고 있다는 지적까지 나오는 상황, 경기일보는 책임수사를 공언했던 경찰의 지난 1년을 분석하고 그 결과를 도민 앞에 보고한다. 편집자주

#1. "廳 반부패, 署 강력계" 일선 경찰 죽어나는 조직 개편


‘경찰개혁의 원년’을 거친 경찰 지휘부가 현장의 목소리를 외면한 채 조직 개편을 밀어붙이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23일 경기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최승렬 경기남부경찰청장은 최근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의 인력 충원을 지시했다. 강력범죄수사대와 안보수사대에서 5명씩, 총 10명을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로 옮기라는 것이다. 업무 부담을 완화하고 수사의 신속성을 기하기 위한 조치로 알려졌으나, 실상은 수사에 허덕이는 일선 관서의 사건까지 가져오기 위한 방침으로 확인되며 직원들이 불만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는 이미 과부하가 걸렸다.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 의혹, 거대 양당의 대선후보 가족들이 연루된 사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 고발 사건 등을 맡고 있다. 더구나 본청 지시에 따라 반부패수사1계 범죄수익추적팀이 수사과 수사2계로 옮겨지면서, 늘어난 인력은 사실상 1명에 불과하다. 기존의 사건들도 속도를 내지 못하는데 대장 포함 101명의 수사관에게 일선의 사건까지 챙기란 것이다.

최근 해체가 진행된 생활범죄수사팀도 논란이다. 당초 생범팀은 지난 2015년 2월 격무에 시달리는 강력계의 짐을 덜어내고 상대적으로 집중도가 떨어지던 민생범죄를 전담하기 위해 출범했다. 도입 이후 지난해까지 전국적으로 13만9천580건의 사건을 처리했다. 그러나 해체 결정으로 경찰서 150곳에 배치됐던 678명 중 과반이 수사과 등으로 이동했고 사건들만 고스란히 강력계의 몫이 됐다.

경기남부청에선 지난 연말 108명이던 생범팀 인력 중 78명(72.2%)이 빠져나갔다. 20년 이상 형사 경력의 강력계장은 “인력은 빼고 사건만 다 가져가라는 게 말이 되느냐”며 “소수의 판단으로 조직을 뒤바꾸지 말고 제발 일선의 의견을 청취하고 결정해달라”고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또 다른 경찰서 강력팀장도 “수사부서가 힘드니 형사도 같이 죽으란 소리”라며 “국수본의 탁상공론”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형사·수사부서 1~2과 분과 조치도 실무자가 아닌 관리자급만 늘린 꼴이 됐다. 지난 8일 단행된 경정급 인사를 보면 수원남부경찰서, 부천원미경찰서, 안산단원경찰서, 평택경찰서, 시흥경찰서 등 5곳은 형사과·수사과가 모두 2개로 쪼개졌다. 분당경찰서, 수원중부경찰서, 용인동부경찰서 등 3곳은 수사과만 분할됐다. 같이 일해야 할 형사지원팀·수사지원팀 서무들은 수사심사관실로 떨어뜨려놨다.

김광식 경기남부청 수사부장은 “최근 범죄 트렌드를 보면 강력범죄는 줄어들고 사이버나 경제 관련 범죄가 늘어나는 추세가 있어 그에 맞는 조직의 변화를 꾀하는 것”이라며 “새로운 체제에 조직이 안착하기까지 시간은 필요하겠으나, 수사권 조정 이후 두 번째 해를 맞은 만큼 점차 발전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경기남부경찰청 전경
경기남부경찰청 전경

#2. 엉뚱한 조직 개편은 '수사 못하는 수사경찰' 때문이다?


현장을 무시하는 조직 개편은 달라진 형사사법체계에 안착하지 못한 수사부서에서 시작된 악순환의 결과로 분석된다.

23일 경찰청에 따르면 국가수사본부는 올해 초 출범 1주년을 맞아 지난해 사건 처리 현황과 함께 2022년 운영 방향을 발표했다. 수사권 조정을 통해 이른바 ‘1차 수사 종결권’을 확보한 경찰은 지난해를 ‘국민체감 경찰개혁’의 원년으로 삼겠다고 했었다. 그러나 경찰이 남긴 기록은 새로워진 형사사법체계에 제대로 정착하지 못하고 있는 현주소를 여실히 드러낸다.

우선 경찰은 사건을 처리하는 데 소요되는 기간이 늘어났다. 지난 2020년엔 건당 55.6일이 걸렸지만, 2021년 들어서는 건당 64.2일로 평균 8.6일 증가했다. 경찰은 ▲수사심사관 제도 등 절차 신설 ▲구체적인 사건 지휘 강화 ▲수사의 완결성 제고 등에 따른 업무 부담이 늘어났기 때문이라고 자평했다. 결국 ‘수사를 잘하느라 오래 걸렸다’는 말인데, 현장에서 나오는 이야기는 다르다.

논란의 당사자인 수사부서 직원들은 수사권 조정 이후 사건 처리 절차가 까다로워진 데다 부수적인 업무까지 많아졌다고 토로한다. 과거 검사가 하던 결정서 작성을 직접 해야 하고, 불송치 사건이라도 사본을 모두 검찰로 넘겨야 해 ‘검찰이 종결권을 주고 복사권을 가져갔다’는 자조까지 나온다. 재수사 요청이나 고소·고발인의 이의신청이 들어오기라도 하면 사건을 처음부터 다시 챙겨야 한다.

늘어난 업무 부담은 ‘경제팀 탈출 러쉬’로 이어졌다. 지난해 1월 형사소송법 개정안 시행 직후 이뤄진 정기인사에선 일선 경찰서 수사과, 특히 고소·고발 사건을 전담하는 경제범죄수사팀의 인력 누출이 심각했다. 수사경과를 포기하면서까지 경제팀을 떠나려는 움직임이 잇따랐고, 빈 자리는 막내급으로 채워졌다. 실제로 지난해 수사업무를 처음 시작한 신임 수사관은 전체 13.3%에 달했다.

업무 과부하가 걸린 상태에서 베테랑이 떠난 자리를 ‘초짜’가 메꾸자 수사부서는 수사에 허덕이기 시작했고, 끝내 사건을 시도경찰청으로 올려보내기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또 생범팀을 해체하면서까지 수사부서 인력을 늘려대는 탓에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와 강력계까지 업무 폭탄에 시달리게 됐다. 경찰은 불가피한 인력 재배치라고 하지만, 정작 강력범죄를 다루는 형사과는 배제된 모양새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일만 늘어나고 보상은 주어지지 않으니 경제팀을 떠나는 건 당연하다”며 “경찰 조직이 거대해졌고 인력도 매년 늘고 있는데, 계속 일손이 부족하다는 건 그만큼 조직 편제의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철저한 직무 분석을 통해 불필요하게 늘려놓은 내근직부터 현장으로 보내야 한다”며 “도둑이 밖에 있지 경찰서 사무실에 있겠느냐”고 꼬집었다.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수사기관 업무 분석. 장희준기자

#3. 검찰과 엮어 보니 '권한에만 눈독 들이는' 경찰 보인다


범죄 수사의 질이 떨어지는 상황에서도 경찰은 수사권 조정의 취지를 역행하면서까지 ‘권한 확보’에만 목을 매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가 올해 초 밝힌 자료를 보면, 경찰이 송치한 사건에 대해 검찰이 ‘보완수사’를 요구한 비율은 지난 2020년 4.6%에서 2021년 10.9%로 2배 이상 늘어났다. 보완수사는 검찰이 기소를 위해 추가적인 수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할 때 경찰에 요구하는 절차다. 다시 말하면 경찰에서 넘긴 수사 내용이 기소를 하기엔 미진하다는 뜻이다.

경찰은 달라진 수사준칙 탓에 검찰이 보강하던 것도 경찰에 요구하기 때문이라고 해명한다. 반면, 검찰은 다른 생각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익명을 요구한 수원지검 소속 수사관은 “수사 완성도가 높았다면 애초에 보완수사를 요구할 필요가 없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이어 “수차례 반려된 영장들이 보완수사를 거친 뒤에야 청구되는 걸 보라”며 “수사가 부족했다는 것을 방증한다”고 꼬집었다.

실제로 경기남부경찰청은 현재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 수감 중인 국민의힘 정찬민 의원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이런 문제를 드러냈다. 지난 2020년 말부터 정 의원을 수사해온 경찰은 지난해 6월 구속영장을 신청했으나, 일부 혐의사실이 소명되지 않아 검찰에서 반려됐다. 보강을 거쳐 그해 7월 다시 신청했지만, 법리적 보완을 이유로 재차 반려됐고 또 다시 보완수사를 거쳐 9월이 돼서야 영장이 청구됐다.

검찰 측 통계를 보면 경찰을 헤매게 만든 수사권 조정이 전체적인 수사 당국까지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대검찰청이 이달 7일 밝힌 개정 형사제도 시행 1년 검찰업무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검사 인지사건은 3천385건으로 전년 6천388건 대비 47% 급감했다. 검사의 수사 길이 반토막 난 것이다. 가장 감소 폭이 큰 범죄는 마약류관리법 위반으로, 전년 대비 644건 줄었다.

당초 검경 수사권 조정의 주요 취지는 경찰이 수사에 전념하고, 검찰은 기소에 집중하라는 것이다. 검찰이 직접 수사를 개시할 수 있는 사건을 ‘6대 범죄’로 제한한 이유다. 그러나 실상은 범죄 수사와 사건 처리의 효율이 모두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과거 송치 사건을 형사사법정보시스템(KICS)에 자기 사건으로 등록·관리하며 수사를 지휘하던 검사들도 이젠 ‘나서서’ 일할 까닭이 없다.

그럼에도 경찰은 그 이상의 ‘권한’에만 치중하는 모양새다. 지난 연말 남구준 국가수사본부장은 “수사권 조정 이후에도 검찰이 영장 청구권과 기소권을 독점하고 있어 개선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검사에 의한’ 영장 청구권을 가져오려 아예 경찰 조직 내에 영장전담검사를 두자는 발상까지 나온다. 검경 조직의 역할이 명백히 다른데도 경찰은 검찰과 같아지려는 데만 몰두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수사권 조정으로 경찰 권한이 너무 비대해지고, 그에 따른 업무가 많아지며, 다른 수사기관과의 관계 정립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 우려했는데 모두 현실로 나타났다”며 “경찰은 준비가 부족했다”고 평가했다. 이어 “경찰에 검사를 두겠다는 건 매우 심각한 편법”이라며 “수사권 조정은 검사 대 경찰관이 아니라, 검찰 대 경찰이라는 조직의 역할 구분이라는 걸 알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장희준기자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