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론] 사라진 어른들, 가출과 실종 사이

법의 사각지대에 갇힌 사람들이 있다. 가족과 연락이 두절되고 소재파악이 안 된 ‘실종성인’이 바로 그들이다. 단적인 예로 지난해 6월 벌어진 ‘마포구 원룸 감금·살인 사건’이 있다. 20대 고교 동창들이 케이블 타이로 피해자를 결박한 뒤 밥도 주지 않고 잠도 못 자게 하는 등 고문으로 사람을 살해한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발견 당시 피해자는 34㎏의 저체중에 영양실조 상태였고, 몸에는 멍자국이 가득했다. 또한 그가 발견된 곳은 좁은 화장실로, 변기 위에 놓인 식은 밥과 소량의 물이 담긴 두 개의 종이컵은 오랜 기간 감금과 가혹행위가 이루어져 왔음을 짐작케 했다.

안타깝게도 피해자를 구할 기회는 충분했다. 특히 피해자 가족이 2차례 실종신고를 했지만, 경찰이 자진가출로 처리한 것은 치명적이었다. 경찰의 변명도 일리는 있다. 피해자가 숨지기 전 경찰과 일곱 차례나 통화했지만, 당시 동창들의 강요로 “잘 지내고 있다”는 취지로 답변했기 때문이다. 경찰은 피해자가 성인이라는 이유로 이를 그대로 믿을 수밖에 없었고, 결과적으로 위치추적 등 강제수사로 전환할 수 없었던 것이다.

현재 대한민국 유일의 실종법은 ‘실종아동법’뿐이다. 성인은 애당초 실종이 아닌 ‘가출’로 분류돼 법의 적극적인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일단 집에 가서 기다려 보시라”는 기계적 답변이 나오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다 큰 성인이 별다른 이유 없이 상당기간 연락이 두절됐을 때, 자진가출일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연락조차 없는 가출은 전체 실종 사례 중 일부인 것이다. 그럼에도 이를 이유로 나머지 대부분의 실종을 가출로 봐서 소극적 대처로 일관하는 건 현실을 도외시한 책임회피일 뿐이다. 특히 지난해 성인 실종신고는 6만7천612건, 미발견 사례는 931명으로, 아동보다 각 3배, 12배 많았고, 지난 5년간 실종성인이 숨진 채 발견된 사례 역시 7천867건에 달한 것을 고려하면 더욱 그러하다. 실종성인법의 필요성이 제기되는 배경이다.

다행히 최근 정치권이 ‘실종성인법’을 발의하고, 경찰 역시 해결책 마련을 위해 나서는 등 법의 흠결을 메우고자 노력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자발적으로 가출한 성인의 인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위치추적 등 강제조치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하지만 “가출이냐? 실종이냐?” 고민하는 사이, 어디선가 어른들이 사라지고 있다. 단지 ‘성인’이라는 이유로 실종성인이 처한 참담한 현실을 외면해선 안 될 것이다.

이승기 법률사무소 리엘파트너스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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