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이후 한국은 수십년간 ‘식민지’라는 암울한 터널을 지났다. 그런데 이 터널이 마냥 캄캄하지만은 않았던, 오히려 대대손손 부(富)를 구축하는 계기가 됐던 이들이 있다. 나라와 민족을 배신한 ‘친일파’들이다.
국내에서 이완용·송병준·홍사익 등 친일반민족행위자들에 초점을 맞춘 첫 번째 전시가 시작됐다. 지난 4월27일부터 오는 9월12일까지 경기도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선보이는 <항일과 친일: 백년 전 그들의 선택>이다. 그간 역사·독립운동 기관에서 친일을 일부 코너로 담아 소개한 전시는 있었지만 전시의 대표 주제로 선정한 건 이번이 최초다.
경기도박물관은 전시를 기획하는 과정에서 걱정이 많았다고 했다. 소위 ‘이완용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얻는 게 뭐냐’는 고민 때문이다. 지난해부터 주변 만류도 컸다는 전언이다. 그러나 친일파들의 행적을 짚으며 독립운동가들의 선택이 얼마나 숭고했는지 다시금 되돌아볼 수 있다는 점에서 경기도박물관은 전시를 구성하게 됐다.
아울러 이번 전시는 경기도의회가 지난해 5월20일 제정한 ‘경기도 일제 잔재 청산에 관한 조례’에 따라 기획했으며, 민족문제연구소·경기문화재연구원·지역문화교육본부 등 다양한 기관과 단체의 후원을 받아 진행했다.
전시는 ▲제1부 ‘대한제국의 비극, 그들의 선택’ ▲제2부 ‘항쟁과 학살, 그날 그곳을 기리다’ ▲제3부 ‘친일과 일제잔재’ ▲제4부 ‘유물로 만나는 경기도의 독립운동가’로 구성됐다. 한말부터 일제강점기까지의 서화, 판화, 사진, 영상물 등 200여 점을 볼 수 있다. <임오군란 다색판화>(35x71㎝)에선 일본군이 위풍당당하게 지시하는 듯한 모습이, <안성 마츠자키 대위 전투 그림>(35x900㎝)에선 청일전쟁 당시 청나라 군이 비겁하게 도망가는 모습이 보여 일본의 역사 미화를 엿볼 수 있다.
특히 경기도는 전국에서 가장 많은 만세운동(총 367회)을 전개하며 격렬하게 싸워온 만큼 그 모습 역시 고스란히 담겨 있다. 거대한 유화 <제암리 뒷동산 만세소리>(200x255㎝)는 물론 청사 조성환이 쓴 가방(17x25x8.3㎝), 류근 선생의 건국공로 훈장증(38.2x51㎝) 등이 전시됐다. 경기지역의 항일운동유적 120곳의 분포 지도 및 일제감시대상 인물카드(전국 4천857명 중 경기도 약 320명)를 한 눈에 볼 수 있기도 하다.
메인은 제3부다. 경기도의 주요 항일독립운동가와 대표적 친일반민족행위자를 못 박으며 을사조약·정미조약·병합조약 당시 ‘나라를 팔아먹은 자들 명단’도 내걸었다. 에필로그는 김구의 ‘나의 소원’(1947)이다.
김기섭 경기도박물관장은 “유사 이래 우리나라가 지금처럼 애국심을 가질만한 시기가 있었을까 싶다. 김구 선생의 희망대로 ‘문화 강국’의 길에 들어서면서 지금 서있는 우리가 100년 전 그때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메시지를 던진다”며 “그간 우리나라에 ‘친일’을 다룬 전시는 없었는데 이번 전시가 일종의 마중물이 되지 않을까 생각하며, 앞으로의 역사적 방향도 짚어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이연우기자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