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동의 시대 ‘관통’… 평등·민주·평화 열망을 담다
수운 최제우 선생이 창도한 동학은 “사람이 하늘”임을 선포한 평등과 자주의 정신이다. 동학농민군은 우금치에서 패배했으나 그 정신은 25년이 지난 1919년 3·1운동으로 다시 불타올랐다. 이때 꽃 피운 자주정신은 독립투쟁으로 건국운동으로 진화했고, 민주화운동으로 열매를 맺었다.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동시에 이룩한 한국인의 위대한 역사를 미술작품으로 증언하는 특별한 미술관이 경기도에 있다.
■미술작품과 역사가 만나다
“19세기, 인간의 존엄성이 세상에 드러나면서 ‘인간은 모두 평등하다’는 민주주의의 첫 싹이 한반도에 솟아났습니다. …한반도 평화와 세계 평화를 염원하면서 이번 근현대사 특별전을 개최하였습니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와의 대화’이듯이 과거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습니다. 여러분들은 바로 이 자리에서 과거와 현재와 미래와의 대화를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용인특례시 강남동로 140번길 1-6에 자리 잡은 ‘근현대사미술관 담다(관장 정정숙)’ 입구에 새겨진 글이다. 2019년 6월에 개관한 근현대사미술관 담다는 우리 역사의 현장을 미술작품으로 증언한다. 미술관 입구를 지키는 김대중과 노무현 대통령의 밀랍 인형은 ‘한반도 평화-거대한 움직임’이라는 작품이다. 두 분 사이에 있는 ‘남겨진 기억-3’(신상철 작)이라는 태극 문양이 한국 근현대사의 역동성을 보여주는 듯하다. 1층 상설전시장에서 한국의 근대를 연 동학과 동학농민혁명, 3·1만세운동, 5·18민주화운동, 한반도평화와 관련된 미술작품들과 만난다. 만주에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해 독립군을 양성한 우당 이회영 선생의 초상(박세라 작),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여 대한 남아의 기상을 세계만방에 떨친 안중근 의사의 단지한 손바닥 도장 그림(상하 작)도 있다. 용인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혁 장군(레오다브 작)과 오광선 장군의 얼굴을 액션페인팅과 실크스크린 기법으로 표현한 작품(이은정 작)도 인상적이다. 독립운동가들의 땀과 피가 스민 태극기가 전시된 공간에서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이룩한 한국의 저력이 무엇일까를 생각해 본다. 대답을 들려주듯 북을 맨 사나이가 왼손엔 활활 타오르는 횃불을 들고 오른손엔 북채를 잡고 달려가고 있다. 전정호의 목판화 ‘북춤’이다. 민주화 투쟁이 활발했던 1980년대에는 전달력이 강한 판화가 유행했다. 홍성담, 전정호, 이상호, 안한수 화백의 작품을 통해 군부가 짓밟은 민주주의를 회복하기 위해 거리로 나서야 했던 어두운 시대와 마주한다. 권총에 피 묻은 태극기가 시선을 빼앗는다. 배경이 되는 거리는 광주 금남로일 것이다. ‘5월 18일 민주주의를 쏘았다’는 글귀가 주제를 선명하게 전달한다. 두 손이 뒤로 묶인 채 계엄군에게 끌려가는 시위대, 태극기에 싸인 관이 널려 있는 흑백사진은 80년 5월 광주로 데려가 준다. 상설특별전으로 전시되고 있는 작품들은 미술관을 설립한 김성인 이사장이 30여 년간 수집하여 소장해 온 작품들과 일부 화가들이 기증한 작품들이다. 김성인 이사장의 작품이 눈길을 끈다. 보라 바탕에 웅크린 태아 형상은 태동하는 시민의식을 상징하고 있다.
“근현대사미술관 담다는 역사를 ‘담다’, 그림을 ‘담다’, 행복을 ‘담다’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한국 근현대사의 중요한 사건들을 조명하는 작품을 매개로 창작자와 관람객이 어울려 ‘함께 행복하게 사는 세상을 만들어가는’ 미술관이지요.” 담다는 역사학을 전공한 정 관장과 그림을 전공한 이사장 김성인 작가의 역사의식이 빗어낸 특별한 미술관이다. 두 사람은 근현대사미술관 담다가 지역사회를 넘어서 전국에서 역사를 제일 잘 알려주는 미술관이 되기를 소망한다. “역사와 관련된 그림도 보고 그 자료도 찾아볼 수 있는 곳이 바로 담다 미술관입니다. 개관까지 어려움이 많았어요. 작품 구매부터 보관까지 우여곡절이 적지 않았지만, 지인들의 도움으로 어려움을 극복하고 문을 열 수 있었습니다.”
■미술작품으로 동학부터 촛불혁명까지
상설전시실에서 5개의 주제로 작품을 만난다. ‘태극기변천사’는 1882년 수신사 박영효 일행이 일본으로 건너갈 때 태극사괘의 도안을 만들어간 것을 시초로 대한제국, 일제강점기, 한국전쟁을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 변천을 살필 수 있다. ‘태동, 동학 1860, 동학에서 미래를 배운다’는 동학의 시작과 정신을 만날 수 있다. 수운 최제우 선생은 미국의 링컨 대통령보다 1년 먼저 노비를 해방했다. 수운은 두 여종 중 한 명은 며느리로 삼고, 다른 한 명은 수양딸로 삼아 ‘사람은 평등하며 누구나 존엄하다’는 동학 정신을 실천한다. ‘분출, 동학농민혁명, 1894’는 인간답게 살기 위해, 세상을 바로 잡기 위해 동학농민혁명으로 시민의식을 분출하는 당시 상황을 담은 홍성담과 전정호 작가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함성1, 3·1만세운동, 1919’는 3·1운동을 이끌었던 의암 손병희 선생과 독립운동과 통일국가 건설을 위해 투쟁했던 백범 김구 선생의 초상화를 손의식 작가의 작품으로 만난다. 이상하 작가는 안중근 의사의 손도장을 빛나는 별의 모습으로 형상화하여 암울한 일제강점기에 조국 독립을 위해 줄기차게 활동한 독립운동가의 정신을 전달한다. ‘함성2, 5·18 광주민주화운동’은 1980년 5월 18일부터 27일까지 광주와 전라도에서 독재에 항거해 일어났던 민주화항쟁의 모습을 증언하고 있다. 오윤, 홍성담 작가의 판화 작품은 사진이나 영상보다 더 강력하다. ‘미래, 평화! 또 다른 시작!’은 손의식 작가의 ‘하나로- 뜨거운 포옹’과 안한수 작가의 ‘무너진 철조망’이 한반도의 평화를 염원하는 국민의 소망을 담고 있다.
근현대사미술관 담다는 시민을 대상으로 북콘서트, 인문학 강좌 등 다양한 프로그램도 기획하고 있다. 한양대 윤석산 명예교수, 경희대 임형진 교수 등이 강사로 나선 인문학 강좌 ‘동학이야기’는 담다의 지향을 보여준다. 담다에서 주관하는 독서모임 ‘용득수기’는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을 쓴 윤영수 방송작가를 초청해 ‘21세기와 이순신의 창조적 리더십’을 주제로 한 인문학 특강을 열고, 북한문화체험 ‘꼬리떡 만들기’를 진행하여 탈북민들과 지역주민들이 어울리는 시간을 마련했다.
■역사와 그림과 행복을 담는 열린 미술관
코로나 19가 기승을 부리던 2021년에도 담다는 부지런히 달렸다. 5·18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아 ‘그림, 자유와 평화를 만나다’ 특별 전시회를 열어 민주주의를 향한 시민들의 외침과 시대정신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게 했다. 봄에는 ‘3·1만세운동과 독립운동 특별기획전-용인, 자유와 평화를 담다’를 열었는데, 용인지역 작가를 포함해 19명의 작가가 참여했다. 정희경 작가의 ‘속삭이는 빛’ 연작은 화면에 무수히 점을 찍는 행위성이 두드러지는 작품이다. 서양화가 손정순 작가 초대전 ‘자연의 향연전’과 장애인 예술가가 들려주는 음악과 퍼포먼스 ‘나의 빛 나의 음악’은 특별한 감동을 선사했다. ‘박금만 여순항쟁 특별전’은 서울경기지역에서 처음으로 여는 여순항쟁 역사화전으로 감춰졌던 현대사의 치부를 정면으로 응시하는 기획이다.
근현대사미술관 담다는 지역예술인들과 연대하는 일에도 열심이다. 2021년 가을, 용인에 거주하거나 용인에서 문화예술활동을 하는 220여 명의 전문 예술인들이 ‘용인문화예술연대’를 출범했다. 사무총장을 맡은 정정숙 관장이 비전을 들려준다. “용인문화예술연대는 음악, 미술, 도예, 풍물, 국악, 서예 등 문화예술 전 분야로 폭을 넓혔지요. 용인예술문화연대가 주관해서 매년 1~2달에 걸친 문화예술축제를 만들 계획입니다. 용인문화예술축제를 이탈리아 베니스 카니발, 영국 에딘버러 축제와 같은 도시를 대표하는 문화상품으로 키우려는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2022년 용인 꿈의학교의 거점활동공간으로 선정된 근현대미술관 담다는 학교는 물론 지역주민들과도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담다는 미술작품을 통해 역사를 이야기하고 이웃과 소통하는 열린 미술관이다.
김준영(다사리행복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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