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10. 포천역사문화관

2015년 7월 개관... 2년뒤 ‘공립박물관’ 등록...전시실 들어서면 150만년 전 ‘돌도끼’ 눈길
양문리 금석문 보며 ‘감탄사’... 유물의 보고, ‘봉래 양사언과 형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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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포천천변 충적지대에 고대부터 형성된 주거지 유적에서 발굴된 토기가 전시되고 있다. 윤원규기자

‘포천’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자신의 경험과 관심에 따라 명성산과 산정호수를, 광릉 국립수목원이나 한탄강을, 금수정을 비롯한 ‘영평 팔경’을, 이동막걸리나 이동갈비 또는 한과를 떠올리는 사람도 있겠다. 주상절리로 유명한 한탄강을 품은 ‘포천(抱川)’은 구석기시대부터 1950년 한국전쟁 전적지까지 역사문화유산이 매우 풍부한 도시다. 그러나 포천시를 즐겨 찾는 여행객은 물론 이곳에 터를 잡고 사는 지역민들도 포천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포천은 땅의 크기가 경기도 31개 시군 중에서 가평, 양평에 이어 세 번째에 속한다. 그러니 역사문화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도 시 전체를 둘러보기가 쉽지 않다. 고구려는 포천을 ‘마홀’이라 불렀는데, 물이 많은 고을이란 뜻이다. 신라는 견고한 성을 쌓아 ‘견성’이라 부르다가 ‘청성’이라 했고, 고려는 개성의 배후 지역으로 관리하며 ‘포주’라고 불렀다. 지금의 지명인 포천으로 부른 것은 조선 태종때인 1413년이다. 포천의 ‘천’은 한탄강을 가리킨다. 한탄강 줄기를 중심으로 구석기-신석기-청동기의 문화가 모두 남아있다. 삼국시대부터 고려와 조선의 역사유적도 풍부하다. 포천시에는 총 84건의 문화유산이 있는데, 국가지정문화재가 10건, 경기도 지정문화재가 23건, 등록문화재가 2건, 포천시 향토유적이 49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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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선사시대부터 현대까지 포천의 역사를 시대별로 만날 수 있는 전시장. 윤원규기자

■ 크진 않지만 알찬 박물관

“자연이 아름다운 옛 선비들의 고장” 포천을 제대로 만나려면 반드시 찾아야 할 곳이 있다. 바로 2015년 7월에 개관하여 2017년 7월에 경기도 공립박물관으로 등록한 ‘포천역사문화관’이다. 장보정 학예연구사의 표현처럼 포천역사문화관은 규모는 그리 크지는 않지만, 내용이 꽤 알찬 실속형 박물관이다. 상설전시실은 포천의 유구한 역사와 문화를 입체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전시실에서 150만 년 전 포천에서 살았던 구석기인들이 사용한 돌도끼와 신석기인들이 사용한 ‘어망추’와 옷을 지을 때 사용한 ‘가락바퀴’와 마주한다. 유물을 통해 과거와 현재가 이어지는 것이다. 유리관에 돌조각들이 나란히 놓여 있다. “용암이 분출될 때 생성된 흑요석인데, 날카로운 날을 만들 수 있어 신석기인들에게 최고의 도구였지요. 포천 한탄강 일대에서 약 2만 점에 달하는 구석기 유물이 쏟아졌다고 해요” 포천이 아득한 옛날부터 살기 좋은 환경을 갖추었다는 관계자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인다. 내부를 입체적으로 보여주는 전시기법이 흥미롭다. 청동기인들은 고인돌 안에 무엇을 넣었을까 궁금했는데, 그 궁금증을 풀어준다. 무덤을 잘라 부장품이 보이도록 전시한 것이다. 온전한 모습을 갖춘 형이상학적인 ‘그릇받침’은 원삼국 시대의 유물이다. 물론 삼국이 치열하게 경쟁하던 시기의 유물도 있다. 기와 조각에 ‘마홀수해공구단’이란 글씨가 새겨져 있다. “고구려가 포천을 ‘마홀’이라 불렀음을 알려주는 귀중한 유물이에요. 백제가 경기 북부지역을 점령했던 5세기 중반 때 처음 쌓기 시작한 반월산성(사적 제403호)은 포천이 전략적 요충지였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철로 만든 도끼와 낫, 그리고 숫돌은 반월산성에서 출토된 것이죠” 반월산성은 포천에 있는 10개의 산성중에서 규모가 제일 크다. 구읍리 군내면사무소 부근에 있는 반월산성은 성의 모양이 반달처럼 생겼다. 백제 한성이 함락된 후 6세기 중반에는 고구려에서 활용한다.

포천에는 후고구려를 세운 궁예와 관련된 이야기가 많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부하 왕건과 싸우다가 패해 도망치다가 통곡했다는 명성산(울음산)을 비롯해 흥미로운 전설이 전해지는 것은 바로 옆이 태봉의 수도였던 철원이기 때문이다.

빼어난 인물들을 여럿 배출한 고장답게 포천에는 서원이 4개나 있다. 옥병서원에는 사암(思庵) 박순 선생이 배향되어 있다. 선조 때 영의정을 지낸 그는 학문에 조예가 깊었다. 임진왜란 때 병조판서로 활약한 백사 이항복도 포천의 인물이다. 백사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설립된 화산서원은 1659년에 사액서원이 되었다. 용연서원은 한음 이덕형과 용주 조경을 모신 곳인데, 흥선대원군이 서원철폐령을 내렸을 때도 살아남은 47개 서원의 하나다. 임진왜란을 극복한 명신이자 청백리이며 우정의 대명사인 오성 이항복과 한음 이덕형은 포천의 자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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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포천의 교통,통신의 역사에 대한 '포천 옛길 전철로 잇다’ 특별전시가 열리고 있다. 윤원규기자

■ 살아 숨 쉬는 예술과 충절의 정신

“영중면 양문리에 위치한 금석문은 우리나라에 4개 밖에 없는 한글비입니다. 1686년 낭선군이 제작한 이 비석은 제작배경이 정확한 것으로 종친이 만든 유일한 금석문이지요.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비인 이윤탁의 한글영비(1536년) 이후에 제작된 이 비는 국어 발달의 이해에 도움을 주는 유물입니다”

한글비 탁본이 시선을 끈다. 장 학예사가 비석에 새겨진 글 뜻을 풀어준다. “선조의 서자 인흥군 이영이 묻힌 곳에 세워진 비석에 새겨진 글씨인데 현대어로 옮기면, ‘이 비가 매우 영험한 힘이 있으니 어떠한 생각으로라도 사람이 거만스럽게 낮추어 보지 말라’는 뜻입니다” 이 한글 비석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것의 하나라고 한다. 봉래 양사언의 멋진 초서를 비롯해 임금이 친히 쓴 어필도 있다. ‘인평대군치제문비’는 인조의 셋째아들이자 소현세자와 효종의 동생인 인평대군 이요(1622~1658)의 인품과 업적을 기리고 위로하고자 신북리에 세운 비다. 효종과 숙종, 영조와 정조 네 분 임금의 글씨를 한 곳에서 볼 수 있는 점이 특별하다. 인평대군은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갔던 두 형이 풀려나면서 대신 볼모로 가야 했지만, 돌아와서는 사은사로 4차례나 청나라를 왕래하는 외교관으로 활약했다. 박물관에서 비문의 내용을 살펴보고 현장에 찾아가서 비문을 마주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면 우리 문화재를 이해하는 안목이 더욱 깊어질 것이다.

토정 이지함(1517~1578)이나 벽암 이벽(1754~1785)처럼 특별한 인물도 만날 수 있다. 포천 화현면 출신인 이벽은 처남 정약전, 정약용 형제에게 천주교와 서양의 선진문물을 전해준 인물이다. ‘토정비결’로 더욱 유명한 이지함은 포천 현감으로 재직하며 한반도의 중앙인 포천의 지리적 이점을 살려 상업활동을 권장하여 부유한 고을로 만들 방안을 조정에 제시한 선각자이다. 포천에는 보수의 상징인 인물도 있다. 관복을 입은 한 사람이 정면을 응시한 초상화가 조금 낯설다. 면암 최익현 선생의 부릅뜬 눈이 이 시대를 꾸짖는 듯하다. 포천면 신북면에서 태어난 면암은 ‘바른 것을 지키고 옮지 못한 것을 물리친다’는 위정척사운동을 전개하다 대마도로 유배되어 단식투쟁을 하다 1906년에 돌아가셨다. 그의 아들 최면식도 아버지를 이어 의병으로 투쟁하였다. 고운 최치원의 후손인 최익현은 채산사에 모셔져 있고, 영정은 청성사에 모셨다. 전시유물은 현대로 이어진다. 사진으로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1960~70년대의 포천 모습을 살펴보는 것도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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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 이윤영(1714~1759)이 그린 관동승계도 화적연도. 윤원규기자

■ ‘사통팔달’ 한반도의 중심도시를 알리는 박물관

포천역사문화관은 2015년 개관한 후 ‘봉래 양사언과 형제들’, ‘나의 보물’이라는 특별전을 열었고, 지난 2021년에는 ‘포천 옛길, 전철로 잇다’라는 기획전을 준비했다. 조선 6대로 가운데 제2대로인 경흥대로(경흥길)를 중심으로 포천의 과거와 현재의 모습을 그렸으나 코로나19로 시민들에게 제대로 홍보도 하지 못했다. 옛길을 주제로 한 기획이 신선하고 흥미롭다. “지도상으로 보면 포천은 한반도의 정중앙이에요. 포천선(전철7호선) 철도가 건설되는데 2027년에 개통될 것이라 합니다. 여기에 맞춘 기획이죠. 앞으로 남북관계가 개선되어 경제협력이 이루어진다면 포천은 일찍부터 상업의 중심지였듯이 물류의 중심지로 다시 주목을 받게 될 것입니다. 통일시대 한반도의 거점도시로 성장할 수 있을 것입니다”

광릉 수목원과 한탄강을 비롯한 아름다운 자연은 포천의 자랑이다. 2019년에 개관한 한탄강지질공원센터는 국내 최초의 지질전문박물관이다. 천연기념물인 대교천 현무암 협곡과 비둘기낭 폭포와 아우라지 베개용암, 그리고 화적연과 멍우리 주상절리 협곡을 함께 둘러보면 포천의 매력에 푹 빠질 것이다. 포천의 과거와 현재를 입체적으로 보여주는 포천역사문화관은 작지만 알찬 실속형 박물관이다.

권산(한국병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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