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에서든 우파에서든 가장 폭력적인 사람은 대개 두려움을 가장 많이 느끼는 사람이다. ‘저들’보다 ‘나음’으로써 자기 지위를 확보하려는 경우가 우리에겐 너무 흔하다. 다른 사람에게 너그러우려면 우선 자기가 안전하다고 느껴야 한다.”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후안 엔리케스 교수가 쓴 ‘무엇이 옳은가’에서 지속적으로 인용되는 구절이다. 옳고 그름의 문제를 가지고 궁극의 질문을 해 나가는 엔리케스 교수는 어떤 윤리적인 것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윤리적 기준을 바꾸는 가장 큰 변수로 ‘기술’을 꼽는다. 인류는 지금까지 기술의 발전에 따라 윤리적 옳고 그름의 판단기준이 바뀐다는 의미이다. 농업혁명과 산업혁명이 그랬고 지금 우리가 당면한 디지털대전환(DX)도 그렇다.
7월1일 임태희 당선인이 경기도교육의 수장으로 취임한다. 2021년 기준으로 4,728개 학교, 166만명의 학생, 그리고 19조1,959억원의 예산을 맡는 자리다. 2009년 4월 김상곤 전 교육부 장관이 MB정부의 교육정책을 심판하겠다고 선거에 나서 경기교육감에 당선된 지 13년 만에 이재정 교육감을 거쳐 다시 보수성향의 교육감이 처음으로 당선된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임태희 교육감 당선인은 MB정부의 핵심이었고, 이번에 인수위원장을 맡은 이주호 전 교육과학기술부 장관도 MB정부의 교육정책을 주도한 인물이니 더욱 그러하다.
많은 사람들이 MB정부 교육정책의 공과를 가지고 ‘옳고’ ‘그름’을 따진다. 여전히 그 점에 천착되어 걱정과 우려를 이야기 한다. 홍상수 감독의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가 아니라 ‘그때도 그랬으니 이번에도 그럴 것이다’라고 이야길 한다. 나는 다른 생각이다. 게임이론의 균형점을 찾아낸 존 내쉬의 균형이론은 상대성의 관점에서 동시대를 살아가는 구성원간의 역동성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기술의 발전은 이제 현재의 상대방 뿐만 아니라 내가 하는 행동에 따라 영향을 미칠 다음세대 시각도 고려해서 행동해야 한다. ‘유전자적 결함을 알고있는 부모가 유전자 편집가위를 사용하지 않았다고 그 결함을 가지고 태어난 손자가 당신을 ’상해죄‘로 고소할 수도 있다고 엔리케스 교수는 이야길 한다. 기술의 발전은 현재의 윤리적 기준과는 완전히 다른 관점에서 사고할 것이다.
13년 전인 2009년과 비교했을 때 우린 지금 엄청난 과학기술 변화에 직면해 있다. 그땐 알파고도, 테슬라도, AI도 없었다. 한편, 1865년 4명의 연주가가 한 곡을 연주하는 데 드는 시간은 100년 뒤인 1965년에도 똑같은 반면 이 연주자들에게 지급하는 돈은 1965년쪽이 훨씬 많다는 보몰의 병폐이론(Baumol’s Disease)에서 보면 세월의 흐름과 관계없이 생산성은 거의 제자리이지만 비용만 꾸준하게 오르는 분야가 많다. 대표적인 곳이 교육분야이다. 지난 10년간 학생1인당 교육비는 공교육비와 사교육비가 지속적으로 상승한 반면 학생들의 학습력은 여전히 개선되지 않았다. 팬데믹 이후 학습격차는 중하위권 학생들과 저소득층 학생에게서 훨씬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
임태희 교육감에서 거는 기대는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라 달라진 새로운 교육의 표준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역량과 경륜을 갖추었다는 점이고, 제언은 ‘옳고’ ‘그름’의 문제를 진보와 보수, 좌파나 우파의 이분법적인 관점에서 해석하지 말고 너그러움을 가지고 교육정책을 펼쳐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조훈 서정대학교 호텔경영과 교수·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 국제협력실장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