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21. 광주 ‘닻미술관’

국내 작가와 해외 작가 ‘만남의 장소’...전시장을 넘어 예술가들 활동 공간 제공
현재 ‘for Life, 생을 위하여’ 기획전...미술관과 함께해온 사진가 작품들 전시
주상연 관장 “작가 성장의 산실 소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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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시 초월읍에서 2010년 10월 개관한 닻미술관은 사진과 책을 중심의 다양한 전시가 열리고 있다. 닻미술관 모습. 윤원규기자

자연 속 둥지 튼 ‘성찰과 치유’의 공간

광주 백마산 자락 진새골에 자리 잡은 닻미술관은 예술을 통한 창조성과 영성 회복을 꿈꾸며 2010년 10월에 개관했다. 닻미술관은 자연과 함께 호흡하면서 내면 성찰과 치유가 이루어지는 전시를 모토로 매년 두세 차례의 사진, 회화 기획전을 벌여왔다. ㄷ자 구조로 되어있는 닻미술관(관장 주상연)은 지붕이 스페인풍인데 건물 가운데 작은 정원이 있다. 중정에 있는 팔각형의 연못이 앙증맞다. 닻미술관 옆에 있는 카페의 이름은 ‘돛’이다. 산속에서 닻과 돛이란 이름을 가진 공간과 마주하는 것이 흥미롭다. 여름날인데도 미술관 주변이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다. 미술관이 아늑한 산속에 터를 잡은 덕분에 코로나가 한창일 때 오히려 관람객이 더 모여들었다고 한다. 미술관을 왜 산속에 만들었을까?

“우리 집의 가훈이 ‘홍익인간’이에요. 아버지가 사업을 해서 번 돈을 사회에 환원하고자 하는 뜻을 세우고 이곳에 땅을 매입하고 복지법인을 만들었습니다. 예전에 이곳은 벌거숭이 산이었는데, 아버지를 따라 8살 때부터 나무를 심었어요. 맏딸로서 집안의 리더 역할을 했던 것이지요”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하고 150년의 역사를 가진 미국 샌프란시스코 아트 인스티튜트에서 사진을 전공하여 석사학위를 받은 주 관장의 작품은 성곡미술관, 한미사진미술관, 인터알리아 아트 컴퍼니, 샌프란시스코 카발로 포인트에 소장되어 있으며, 작품집 <중력과 은총>과 <물 위를 걷다>을 펴낸 중견 작가이다. 2009년에 귀국한 주 관장은 2010년에 이곳에 닻미술관을 열고 2011년에 제1종 미술관으로 등록하여 올해 개관 12주년이 되었다. 미국에서 책을 만드는 일을 배운 주 관장은 미술관을 열면서 수제 책 제작 공방 닻프레스도 열었다. 책은 물리적인 공간의 제약 없이 예술을 전달하기 좋은 매체라 생각한 것이다. 전시장 옆에 있는 카페 돛에 가면 닻프레스에서 출판한 아름다운 책들을 볼 수 있다. 주 관장은 서울과 광주를 오가면 책을 만들고 작품 전시를 기획한다. “제가 할 수 있는 일과 좋아하는 일이 잘 조화를 이루었다고 생각해요. 한계를 벗어나서 생동감 있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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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전시장에서는 국내외 사진가들의 작품 가운데 40여점을 선별하여 구성된 <for Life, 생을 위하여>가 열리고 있다. 윤원규기자

■ 푸른 산속에 닻을 내려 자연을 건져 올리는 미술관

지난 12년 동안 닻미술관에서 열었던 기획전시를 살펴본다. ‘빛으로 간 사진’ ‘숲, 숨’ ‘순간의 지속’ ‘종이 위의 예술’ ‘사진풍경전 : 바람과 볕이 드는 창’ ‘Our World’ ‘일상의 생각 별과 사람’ ‘무아 경’ ‘침묵의 시’ ‘섬’ ‘어둠’ ‘하늘, 바람, 별 그리고 시’ ‘물오르다, 물만나다, 물들다’ ‘공명의 소리’ ‘예술가의 정원’ ‘지금, 여기’ ‘변화의 여정’ ‘시·象’ ‘온도의 결’ ‘다른 감각들의 공간’ ‘철학자의 돌’ ‘린다 코너 사진전 REFLECTION’ ‘물질과 상상’ ‘집- 주명덕 사진전’ ‘경계선 위에서’ ‘틀 없는 틀’ ‘대지의 기억으로부터’ 등 주제만으로도 닻미술관이 추구하는 정신을 읽을 수 있다. 미술관에서 기획한 주요 전시를 연간 간행물 <깃>에 충실하게 기록해온 것은 숨길 수 없는 자랑이다.

“깊게 뿌리박힌 중심이 되고자 출판사 이름을 ‘닻’으로 삼았고, 영감을 널리 퍼트리는 매체가 필요할 것 같아 아티스트 인터뷰 매거진 <깃>을 발행했습니다. 닻프레스에서 지금까지 약 80여권의 책을 만들었는데, 지난 몇 년간 아트 북이 가장 발달한 미국에서 호평을 받았어요. 스탠퍼드 스페셜 컬렉션이 스페셜 에디션을 소장했고, 뉴욕공립도서관에서는 닻프레스가 출간한 전권을 소장하고 있습니다. 뉴욕과 샌프란시스코, LA에서 열리는 북 페어에도 해마다 참가하고 있습니다”

닻프레스에서 발행한 책은 또 하나의 예술작품이다. 예컨대 김수영의 시 ‘풀’을 수록한 책은 표지를 넘기면 낱낱이 풀이된 종이가 ‘바람보다 먼저’ 눕거나 일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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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위부터 시계반대 방향) 작가들이 다양한 공예활동을 벌이는 나무공방, 미술관 곳곳이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다, 자연 속에서 커피 한잔의 여유를 느낄 수 있다. 윤원규기자

■ 도시와 도시, 작가와 작가를 이어주는 마당

닻미술관은 국내 작가와 해외 작가가 만나는 공간이다. 단순히 전시장을 넘어서 예술가들이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샌프란시스코와 뉴욕에서 살면서 서부와 동부의 작가들과 인연을 맺은 주 관장은 닻미술관을 통해 이들을 연결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닻미술관의 아티스트 레지던시는 신진 작가들이 새로운 창작의 에너지에 집중하거나, 특정한 프로젝트를 수행할 수 있는 창작의 산실이다. “사진예술과 출판의 꾸준한 국제교류를 통해 시작된 레지던시 프로그램은 국적, 종교, 성별, 학력에 관계없이 국내외 모든 예술가에게 열려있습니다”

현재 닻미술관에서 진행되는 기획전은 ‘for Life, 생을 위하여’이다. 그동안 닻미술관과 함께해온 국내외 사진가들의 작품 가운데 40여점을 선별하여 구성한 전시인데, 참여 작가들의 면면이 화려하다. 1세대 작가인 주명덕을 비롯해 서영석, 이모젠 커닝햄, 론다 래슬리 로페즈 등 닻미술관이 사랑한 작가들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물론 주 관장의 스승 린다 코너의 작품과 주 관장의 작품도 만날 수 있다.

“지금은 돌아가신 부모가 안긴 산과 계곡, 갓 태어난 아이를 안고 있는 아내, 역동적인 물결과 고요한 구름. ...이 모든 것이 각각의 이름을 가진 하나의 생명으로 이어져 쉼 없이 흐르고 있다. 마음이 적당한 단어를 찾지 못해 울렁거릴 때, 여기 말이 없는 사진들에 눈길이 닿는다”-주상연

바바라 보스워스의 작품은 광활한 자연을 배경으로 서 있는 작가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모습을 통해 인생의 의미를 묻고 있다. 꽃과 냇물을 보고 산을 응시하는 노부부의 모습이 가슴에 먹먹하게 스며든다. 앤드류 골드의 파도를 담은 작품은 시시각각 변하는 바다의 표정과 파도의 높이, 물결의 흐름과 방향, 하얗게 부서지는 포말까지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린다 코너의 ‘Baby Feet’은 아기의 작은 발을 감싸 쥐고 있는 손에서 생명의 경이로움과 부모의 따뜻한 사랑이 느껴진다. 햇살이 반짝이는 바다에 발을 담그고 선 두 사람의 모습을 환상적으로 보여주는 엘라이쟈 고윈의 작품도 흥미롭다. 생을 살아가면서 만나는 감동의 순간이다. 창밖으로 나무가 훤히 내다보이는 전시 공간은 작지만 닻의 정신을 보여주는 특별한 곳이다. 전시 작품도 숲과 잘 어울린다. 물 위를 걷는 작은 소금쟁이들과 반딧불이와 같은 정겨운 생명체들이다.

■ 작가를 키우고 모으는 나눔의 공간

닻미술관은 창작과 전시 공간을 더 넓혔다. 야생 정원과 작은 3평짜리 나무집을 마련했다. 2017년에 <월든>의 작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전시를 열었는데, 그때 건축도면에 나오는 것과 똑같이 나무집을 지은 것이다. 이 집은 작가들을 양성하는 스튜디오로 이용할 계획이다. 오는 8월27일에 숲의 소리와 빛을 채집하여 빛과 소리를 주제로 한 전시를 연다. 9월24일부터 크리스 맥카우(Chris McCaw) 사진전이 열린다. 닻은 흔들리지 않는 나무의 뿌리 같은 상징이다. 삶은 바다를 항해하는 것과 같다는 주 관장의 비전을 들어본다.

“내가 해야 할 역할이 무엇일까? 함께 하는 제자들이 일하기에 좋은 직장으로 만드는 것이 첫째 과제다.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국내외에서 주목을 받고 있으며 결과에 대한 보상을 받기 시작하는 시점이다. 우리는 자생하기 힘든 내용을 펼쳐내는 공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혼자 할 수 없는 일이기에 뜻과 목적이 같은 사람들을 모아 팀을 만들었다. 이것을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30대에 작가로 활동하면서 느꼈던 것은 토양이 갖춰지지 않은 곳에서 한 예술가가 탄생하고 성장하기란 어렵다는 것이다. 작가들이 활동하고 성장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들면서 동시에 대중들이 원하는 것을 만들고 나눌 것을 궁리하고 있다”

권산(한국병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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