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초 중부지방을 중심으로 내린 기록적인 폭우가 남긴 상처는 아직 곳곳에 남아있다. 전국적으로 20명이 사망·실종되고 2,600여명의 이재민이 발생하기도 했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한전 경기북부본부 양평지사가 위치한 양평군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될 만큼 초유의 집중호우(8.8~8.11간 전국 최대 누적 강수량 641mm)가 쏟아져 농경지 침수, 도로 유실 등 광범위한 피해가 발생하였다.
전력설비의 피해도 적지 않았다. 나무가 쓰러지며 전선을 덮쳐 전주가 부러지는가 하면, 도로가 유실되며 전주도 함께 휩쓸려 나가기도 했다. 필자는 입사한지 6개월 남짓의 새내기이지만, 설비피해에 대한 우려보다도 정전으로 인한 고객들의 불편과 혹시 모를 안전사고에 대한 걱정이 앞섰다. 다행히 대부분의 정전은 빠르게 복구되었지만, 피해가 큰 일부지역은 복구에 많은 시일이 걸렸다.
전기공급에 가장 오랜 시간이 걸린 곳 중 하나는 양동면 노기산 정상 부근에 위치한 2가구였다. 산사태로 이면도로 500m 가량이 유실되어 차량 진입조차 할 수 없었기에 복구공사도 상당기간 지연될 수 밖에 없었다. 폭우로 불어난 물이 흘러내리는 산길을 따라 2km 이상을 올라가야 닿을 수 있는 이 산간가구에는 지자체의 행정력도 닿지 않아 주민들의 생사확인 조차 하지 못한 상태였다.
‘아무리 외진 곳, 단 한가구의 전기공급도 끝까지 책임진다’는 사명감을갖고 한전 양평지사가 이분들을 찾아 산을 오르기로 했다. 고립주민들이 하루라도 빨리 전기를 사용하실 수 있도록 2인가구가 최대 4일간 사용할 수 있는 1.5kWh 휴대용 에너지저장장치 4개를 짊어졌다. 폭우에 넘어져 산길을 막고 있는 나무들을 피해 산에 오르기를 2시간여, 드디어 우리를 보고 너무도 반가워하시는 주민들을 만날 수 있었다. 에너지저장장치에 냉장고와 실내 전등을 연결하고 전원을 켜드린 순간, 최소한의 전기문명 혜택만으로도 환하게 웃으시던 주민들을 보며 ‘일하는 보람이란게 이런 거구나’하는 생각과 함께 한전에 근무하는 것에 대한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다.
한편, 아쉽게 생각되는 점도 있었다. 폭우가 내리고 정전이 발생하던 3일간, 한전 양평지사 관할에서 전주 194기가 쓰러지거나 파손되었고, 200여 구간의 전선이 단선·유실되는 등 막대한 설비피해가 발생하였으며, 1,300여건의 정전신고가 접수되었다. 대부분의 고객분들께서는 감사하게도 정전의 불가피함을 이해해 주셨지만, 일부 고객은 빨리 복구해달라며 직원들에게 호통을 치거나 폭언을 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번과 같이 폭우와 산사태로 발생한 정전은 평상시처럼 신속한 복구가 이뤄지기 쉽지 않다. 동시다발적인 설비피해를 복구하기 위한 인력과 자원의 한계도 있을 뿐더러, 폭우나 지반약화 등 안전이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복구작업을 진행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기 때문이다. 정전으로 인한 불편함보다 작업자의 소중한 생명과 안전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사실, 평상시에도 작업자들은 편리한 전기사용을 위해 안전사고의 위험과 싸우고 있다. 이러한 안전사고의 위험을 줄이기 위해 한전은 ‘정전 후 작업’제도를 확대해가고 있는데, 기존에는 전기공급의 중단없이 전기가 통하고 있는 상태에서 작업을 했다면, 이제는 고객들께 양해를 구하고 전기를 차단한 상태에서 작업하겠다는 의미이다. 우리가 집에서 220V 전구를 교체할 때에도 차단기(일명 두꺼비집)을 내리고 작업했던 기억을 떠올려 보면 이보다 100배 높은 전압인 22,900V가 흐르는 전주에서 작업을 할 때 전원을 차단하는 것은 어찌보면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가평군에 위치한 호명호수공원에는 한전 순직사원 위령탑이 있다. 필자가 고립주민들에게 전기를 전달하기 위해 산에 올랐던 지난 8월처럼, 과거 수십년간 전국 방방곡곡에 빛을 전하기 위해 힘쓰다 불의의 사고로 돌아가신 분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설립된 것이다. 더 이상의 숭고한 희생이 반복되지 않도록 생명존중의 가치가 최우선 되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가 전기공급 중단으로 인해 느끼는 작은 불편함이 누군가의 생명을 살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좀 더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가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신준환 한국전력공사 양평지사 전력공급부 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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