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정부의 대·중소기업 간 상생협력에 대한 밑그림이 그려지고 있다. 그동안 공석이었던 공정거래위원장이 임명되고 국민통합위원회의 대·중소기업 상생특별위원회가 출범하면서 진용을 갖추게 된 것이다. 지난 2년 반 동안 코로나19로 인해 한국 경제의 기초체력이 떨어진 상태에서 고금리, 고환율, 고물가의 트리플 악재가 겹치고 있어 위기 극복을 위한 기업 간 협업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그동안 대·중소기업 간 상생협력을 위한 역대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현장의 체감도는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다. 거래의 불공정, 제도의 불합리, 시장의 불균형이라는 이른바 ‘경제 3불 문제’는 여전히 미완의 과제로 남아 있다. 특히 거래의 불공정 문제는 원자재 가격 급등에 따른 납품단가 조정 문제로 갈등이 가시지 않고 있다. 이유인즉 원자재를 공급하는 대기업은 가격 변동에 즉각적으로 조정하고 있는 반면, 원자재를 가공해 대기업에 부품을 납품할 때는 단가 조정에 미온적이라는 것이 중소기업계의 불만이다. 이처럼 납품단가 문제는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그동안 업계와 정부가 해결 방안을 모색해 왔지만, 중소기업계가 만족할 만한 해답을 구하지 못하고 있다.
대기업은 대외여건이 나빠지면 원가 절감을 위한 중소기업의 협조를 구하지만 경제 상황이 호전되면 ‘나 몰라라’ 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고 중소기업계는 불만을 토로한다. 중소기업들은 대·중소 상생협력이 동고(同苦)는 있고 동락(同樂)은 없는 불편한 관계라고 주장하고 있다. 모기업이 잘돼야 협력기업도 잘된다는 단순한 원리를 모를 리 없지만, 동고동락이 안 되는 상생협력은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것이 현장의 목소리다.
중소기업의 거래 구조를 살펴보면 동고동락의 상생협력이 왜 중요한지 이해하게 될 것이다. 제조 중소기업 중에서 외부로부터 주문을 받아 생산하는 수위탁 거래 기업의 비중은 축소되는 추세를 보이고 있으나 여전히 전체 중소기업의 40% 정도는 다른 기업으로부터 주문을 받아 생산해 납품하는 거래 구조다. 과거와 비교해 그 비중은 줄어들고 있으나 모기업 의존도는 여전히 높은 편이다. 수탁기업의 매출액 중에서 납품액이 차지하는 비중인 납품액 의존도는 80%를 상회하고 있어 모기업에 대한 의존도가 절대적이다.
이처럼 기업 간 거래관계에서 상생협력의 중요성이 절실하지만 현장에서는 납품단가는 여전히 해결하기 어려운 과제임에 틀림없다. 원자재 가격이 변동하면 그에 따른 납품단가가 조정돼야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다. 이 당연한 명제에 대한 논의가 시작된 지 14년 만에 제도 개선에 한 발짝 다가서고 있다. 납품단가 연동제에 대한 기대와 우려의 시선이 교차하고 있다. 현재 시범사업에 41개 기업이 참여하고 있는 만큼 연말까지 운영 성과를 분석하고 개선점을 도출해 현장에 안착시키는 일이 중요한 과제라 할 수 있다.
지난 20년 동안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상생협력을 위한 다양한 논의와 경험이 축적돼 있어 이러한 지적자산을 활용해 대·중소기업 간 상생협력의 차원을 업그레이드할 필요가 있다. 일방의 희생을 전제로 한 상생협력은 지속할 수 없다는 점은 익히 경험한 바 있다. 적어도 납품단가 문제에 대해서는 대기업의 전향적인 자세 전환이 요구된다. 납품단가를 후려치는 관행을 버리지 않고는 동고동락을 요구할 수 없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지금과 같은 위기 상황에서 원가 절감의 몫을 중소기업에 전가하는 것은 공정하지도 않고 상식적이지도 않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김세종 이노비즈정책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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