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지금] 인도주의적 지원과 블록체인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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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호 월드비전 경기남부사업본부장

우크라이나 정부는 러시아와의 전쟁이 발발한 지 며칠 지나지 않은 지난 2월27일 정부 공식 트위터 계정에 “우크라이나 사람들을 지지해 주세요. 지금부터 가상화폐 기부도 받겠습니다. 비트코인, 이더리움, 테더 가능합니다”라는 글을 게시했다. 전자지갑 주소만 알면 손쉽게 본인의 디지털 자산을 기부할 수 있어 하루 만에 200억원이 넘는 큰 금액이 모금됐다.

국내에서의 디지털 자산 기부는 몇몇 기관에서 시범적으로 시도한 사례가 발표될 정도로 아직은 낯선 상황이지만 해외에서는 블록체인 기반의 디지털 자산 기부가 점차 확대되고 있는 추세다. 미국의 가상화폐 자선단체인 ‘기빙블록(The Giving Block)’에서 발표한 2021년 연례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이 단체에 기부된 가상화폐 후원금은 약 6천964만달러로 전년 대비 1천558% 증가했다고 한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술 중 하나인 블록체인 기술은 블록에 데이터를 담아 이를 체인 형태로 연결하고 수많은 컴퓨터가 동시에 이를 복제해 저장하는 분산형 데이터 기술을 말한다. 저장된 정보는 변경이 불가능하고, 중개자가 필요 없어 비용 절감 효과가 높다. 무엇보다도 열람이 가능한 장부에 사용 내역이 기록되기 때문에 투명성이 담보돼 있는 기술이다.

블록체인 기술은 구호사업 분야에서도 활용되고 있다. 선도적으로 이 기술을 활용한 곳은 유엔 산하의 세계식량계획(WFP)이다. 지난 2017년 파키스탄에서 ‘빌딩 블록스(Building Blocks)’라는 블록체인 기반의 구호사업을 시범적으로 진행했다. 시범사업 결과 수혜 가정에 지원된 현금의 사용 내역을 열람 가능한 장부에 공개적으로 기록하는 데 성공했다. 2018년 요르단에서는 난민 캠프에 거주하는 10만6천여명의 난민들이 블록체인 기반의 계좌에 입금된 지원금으로 식량을 구입할 수 있었고, 이를 통해 전통적인 은행 거래에서 발생할 수 있는 수수료를 98%나 절감할 수 있었다. WFP는 시범사업의 성공 경험을 바탕으로 인도, 시리아 등 다양한 구호사업 현장에서 블록체인 기반의 사업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구축된 기부 플랫폼인 ‘체리’가 지난 2019년 12월 첫선을 보였다. 기부의 모든 과정을 실시간 공개하는 이 플랫폼에서는 국내 다양한 비영리단체의 인도주의적 사업 캠페인이 소개되고 있으며, 실제 플랫폼 방문자들의 기부 참여까지 이어지고 있다. 현재까지 1천423건의 캠페인 소개를 통해 누적된 기부금은 50여억원에 이른다.

월드비전에서는 국내 비영리단체 중 최초로 블록체인 기업 퍼블리시와 손잡고 디지털 자산 후원 페이지를 지난 9월 초에 오픈했다. 후원자가 본인의 지갑에 있는 가상화폐를 월드비전 전자지갑으로 이체하는 후원 방식으로, 국내에서의 디지털 자산 기부활동을 선도적으로 도입했다.

인도주의적 지원 분야에서 블록체인 기술 활용은 사업의 효율성을 높이고 기부자들에게 기금 사용을 투명하게 보고할 수 있다는 데 큰 강점을 갖고 있다. 비영리단체 기부금이 어떻게 모금되며,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를 손쉽게 본인이 확인할 수 있는 시기가 머지않아 올 것이다.

최성호 월드비전 경기남부사업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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