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9일로 한글날이 576돌을 맞이했다. 온종일 가을비가 내리는 와중에 국립한글박물관 잔디마당에서 경축행사가 진행됐다. 물론 이날의 행사가 너무 조촐했다는 언론의 지적도 있긴 했지만, 세계를 휩쓰는 K-문화 열풍과 디지털 세상에서 우리 한글의 기상 상황은 ‘매우 맑음’이다.
한글은 한국인의 자부심이다. 자국의 글자를 만든 사람과 만든 과정이 알려진 세계 유일의 나라며, 자국의 문자를 제정한 날을 국경일로 기념하는 세계 유일의 나라이기도 하다. 역사상 한글날이라는 이름으로 기념행사가 처음 개최된 것은 1928년이다. 조선어연구회(한글학회의 전신)와 신민사가 공동으로 한글날이라는 이름으로 첫 기념행사를 했다. 이어 한글학회와 우리 국민의 염원을 담아 광복 이후 한글날이 제정됐고, 2005년 국경일 지정을 거쳐 2013년에는 공휴일로도 지정됐다.
그런데 요즘은 한글이라는 말을 일반적으로 사용하지만, 과거에는 언문이라는 말을 주로 사용했다. 그런데 우리말 사전에 언문(諺文)의 뜻을 찾아보면, ‘예전에 한글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라고 돼 있다. 과연 우리 선조들이 언문을 속되게 사용했을까? 그렇지 않다. 한자에 대칭해 우리 글이라는 의미로 주로 사용했다. 대표적인 인물이 실학자 유희(柳僖·1773∼1837)다. 유희는 ‘언문지(諺文志)’라는 이름의 우리 글 연구서를 써 언문의 우수성을 널리 알렸다.
1824년 언문지에서 유희는 한글의 뛰어난 점은 글자의 상호 연동성이라고 했다.
예를 들어 한자는 모양이 복잡하고 글자마다 연관성이 없어 모두 외워야 하지만 언문은 중성으로 초성을 이어받고 중성으로 중성을 이어받아 각각 차례가 있고 가로세로가 가지런해 쉽게 글자를 깨칠 수 있다는 것이다.
유희는 언문으로 뜻을 전하면 한자와 달리 틀릴 수가 없으니 부녀자나 할 학문이라고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고 했다.
유희의 연구에 따르면 언문으로 기록할 수 있는 음은 무려 1만250개에 달한다. 유희는 이 1만250개는 인간이 발음할 수 있는 성음(成音)의 총수라고 했다.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한글이야말로 인간의 모든 소리를 담아낼 수 있는 문자라는 의미다. 유희는 표음문자로서 언문을 국제적인 발음기호로 인식했다. 이미 한글을 세계화될 수 있는 문자로 본 것이다.
정성희 실학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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