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무역수지 적자, 구조적 관점서 바라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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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길수 한국무역협회 경기지역본부장

최근 우리나라 무역수지가 심상치 않다. 올해 4월 무역수지(수출액-수입액)는 2008년 이후 처음으로 적자로 돌아선 데다 6개월 연속 적자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금년 9월까지 누적 무역 적자액도 289억 달러에 달한다.

우려스러운 것은 당분간 무역수지 적자의 개선 여지를 찾기 어렵다는 점이다. 최근 무역적자 대부분이 에너지 수입 급증에서 기인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에너지 시장 혼란이 좀처럼 안정화될 기미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더욱이 한국 경제를 지탱해온 수출도 둔화세가 확연해지면서 무역수지 적자가 장기화될 우려가 짙어지고 있다. 우리 수출증가율은 지난 6월 이후 한 자릿수로 꺾인 데다 주력품목인 반도체는 가격이 하락하면서 3개월 연속 수출 감소세가 유력하다. 글로벌 인플레이션과 공급망 불안이 더해지면서 수출 기업들이 느끼는 체감경기는 이미 얼어붙기 시작했다.

최근 무역수지 적자는 일시적인 요인이 큰 만큼 에너지 가격이 진정되는 대로 무역수지도 차차 흑자기조로 회복될 것으로 본다. 그러나 무역수지 적자는 수치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기존에 활발했던 수출품목에서 이제 별다른 힘을 쓰지 못한다는 점에 경각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올해 반도체가 어려워지면서 곧바로 수출이 타격을 받았는데 이는 우리나라 수출이 얼마나 반도체 산업에 편중돼 있는지 구조적 취약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휴대폰, 디스플레이 등은 최대 고객인 중국이 이제는 최대 경쟁자로 떠오르며 과거처럼 무역흑자에 기여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 10여년간 신산업 부상 없이 자동차, 철강, 석유화학 등 주력업종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고, 해외 생산이 많아지면서 수출이 양적으로 늘어나기 어려워졌다. 최근 무역적자의 배경에는 결국 우리 수출산업의 경쟁력 저하 문제가 산재해 있다.

주춤한 수출동력을 다시금 끌어올려 우리 경제가 재도약하기 위해서는 미래 모빌리티, 우주항공, 인공지능 로봇 등 유망 신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키우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기다. 미래산업이 쑥쑥 성장할 수 있도록 규제를 혁파하고, 기업들의 자발적인 혁신이 가능한 생태계 구축 역시 필요하다.

최근 무역수지 적자가 우리 수출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근본적 물음을 제시했다면, 새로운 성장엔진 발굴과 기업혁신으로 대안과 해결책을 찾아가야 할 것이다. 이것이 무역수지가 흑자냐 적자이냐를 넘어 그 바탕에 흐르고 있는 우리 무역의 구조적 변화를 면밀히 살펴봐야 하는 중요한 이유다.

배길수 한국무역협회 경기지역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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