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베스’는 영국의 극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으로 널리 알려진 작품이다. 셰익스피어는 이 작품에서 충동과 야망에 사로잡혀 눈이 먼 인간이 내면의 갈등에 휩싸인 채 파멸에 이르는 모습을 담아냈다.
경기도극단의 한태숙 감독은 맥베스의 부인을 중심으로 재해석한 ‘레이디 맥베스’를 선보인 바 있는데, 지난 3일부터 고전 ‘맥베스’를 다시 무대 위로 올렸다. 많은 이들의 손을 거쳐 여러 차례 조명 받아 온 셰익스피어의 ‘맥베스’가 과연 이번에 어떤 모습으로 관객들과 만나고 있을까. 전박찬 배우가 연기한 맥베스는 위태롭게 흔들리다가도 광기와 충동에 사로잡혀 확신의 발걸음을 내디딘다. 극 중 맥베스의 대사처럼, 선택은 어렵지만 결단은 쉬운 법이다. 그렇다면 욕망의 노예가 된 뒤에는 무엇이 남는가? ‘맥베스’가 남긴 묵직한 질문들을 경기아트센터 소극장에서 오는 13일까지 만날 수 있다.
한 감독과 김민정 작가(각색)의 손을 거친 ‘맥베스’에선 동시대성이 두드러진다. 이곳은 중세 배경 대신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처럼 보인다. 현대식 군복과 총기, 귀를 울리는 헬리콥터의 프로펠러 소리가 녹아든 불안정한 음향들 속에서 맥베스는 광기 어린 눈빛을 번뜩인 채 자신 앞에 놓인 운명을 저울질하고 있다.
연극을 통해선 왕권 탈환에 눈이 멀어 버린 맥베스가 어째서 타락과 파멸로 향해가는지 명확히 알기 힘들다. 오히려 연극은 인물들이 ‘어떻게’ 망가져 가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따라서 맥베스가 사람을 죽이거나 심리적인 변화를 겪을 때마다 그의 뒤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또 다른 내면이 눈에 띈다. 죄의식과 욕망, 불안과 공포가 뒤섞인 맥베스의 내면이 인간과 비슷한 생명체로 형상화된 존재다. 이 존재는 관객들이 맥베스의 심리 상태에 더욱 깊게 몰입할 수 있도록 이끈다.
이처럼 경기도극단의 ‘맥베스’는 무대 위 다양한 표현들을 통해 여러 방식으로 관객과 소통하고자 한다. 그에 따라 이번 공연은 원작의 무대를 그대로 재현하지 않았다. 총탄이 울려 퍼지고 군인들이 죽어나가는 전장의 한복판, 피비린내와 희뿌연 연기가 뒤엉키는 죽음의 공간을 내세워 관객에게 손짓한다. 그래서 무대 위 인물들의 곁에 놓인 죽음의 기운이 눌러 붙은 관들이 중요한 소재가 된다. 극이 진행될수록 배우들이 관을 들고 움직이거나 관이 구조물이나 장소처럼 변하면서 관에 다양한 의미가 덧입혀지기도 한다. 끝내 관들이 모여 운명과 예언이 실행되는 던시내어의 숲으로 변하는 시점이 되면, 관객들은 말라붙은 나무처럼 빽빽하게 서 있는 관들을 사이에 두고 벌어지는 인물들의 처절한 몸부림을 만날 수 있다.
마침내 읊조리는 맥베스의 마지막 독백은 욕망 앞에 스러진 인간의 덧없음을 드러낸다. 살아가면서 충동에 못 이겨 광대처럼 소란을 피우고 무대 위 배우처럼 떠들어 대더라도 끝나고 나면 아무도 알아주는 이가 없는, 한낱 그림자에 불과한 것이다.
한태숙 예술감독은 “유혹에 사로잡혀 고뇌에 빠진 맥베스의 딜레마가 현대인들이 겪는 내면의 갈등과 다를 바 없다는 걸 드러내고 싶었다”면서 “총질이 난무하는 살육의 무대가 배경이지만 현장의 인상보다는 정신의 세계가 극을 지배하는 작품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어 한 감독은 “사람이 현실을 인식하지 못한 채 통제불능이 될 때 어떤 불행이 찾아오는지 이번 공연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송상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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