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또 다른 위험, 광화문은 안전한가

image
이만종 한국테러학회장

공포, 충격, 분노, 그리고 비통한 슬픔. 이태원 핼러윈 참사로 11월의 대한민국은 악몽이다. 총체적인 무능과 무기력한 모습은 그동안 우리 정부의 위기관리가 얼마나 취약한지 보여줬다.

생명을 구하는 것은 분초를 다투는 일이다. 때로는 전시 상황처럼 일사불란하게 이뤄져야 하지만 예방대책은 미비했고, 신고도 묵살됐다. 행정 과잉을 우려했다는 변명은 당국이 내놓을 말이 아니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문득 또 다른 위험이 걱정된다. 만일 광화문광장, 홍대 앞 버스킹 등 거리에서 차량을 이용한 돌진 테러가 발생한다면 어떻게 될까. 11월 첫 주 광화문광장을 보았다. 광장은 인도와 차도를 구분하는 경계턱이 낮아 차량 진입이 가능하고. 현장의 화분 사이 간격은 3~4.5m로 배치돼 폭이 좁은 차량은 화단 사이로 충분히 진입이 가능했다.

도로 경계턱 높이는 17㎝에 불과했다. 더구나 턱이 없는 횡단보도를 통해 차량은 얼마든지 광장에 진입할 수 있다. 볼라드 같은 차량 차단용 안전 블록 설치는 아예 없어 한 대만 돌진해도 큰 피해가 예상된다. 수년 전 새벽 택시가 광장 지하보도까지 진입하기도 했다.

세계 각국은 2016년 베를린 크리스마스 마켓 차량 테러 이후 보행자 운집지역에 차량 돌진 테러 안전조치를 강화했다. 유럽연합은 10억유로를 조달하고 파리와 영국, 독일과 미국도 주요 도시에 차량 차단용 볼라드를 설치했다. 최근 라스베이거스는 500만달러를 들여 1만5천파운드 무게의 차량이 시속 80㎞로 돌진해도 견딜 수 있는 700개의 장애물을 설치했다.

언제 어느 때, 어떤 위험이 우리 곁에 도사리고 있는지 예측하기 힘든 불확실한 시대다. 총체적 대응을 할 수 있도록 세부적 검토가 필요하다. 대통령의 책임은 막중하다. 보다 전면에 나서 국민들을 아우르고, 해이해진 기강을 다잡아 사태 수습을 독려하는 모습을 국민들에게 보여줘야 한다.

이번 사고가 던진 가장 큰 우려는 우리 사회의 갈등과 분열이 폭발 직전의 임계점에 이르렀다는 점이다.

그러나 국가의 자유로운 평화와 번영은 우리가 최악을 직시할 때만 실현될 수 있다는 주장은 우리의 걱정을 위로하기도 한다. 레이먼드 윌리엄스와 E P 톰슨 같은 사상가들이 말한 ‘공통의 문화’는 모두가 똑같은 것을 믿는 문화가 아니라 모두가 동등한 지위를 갖고 서로 협력해 공통된 삶의 방식을 결정하는 문화라는 뜻이다.

미래의 어느 날 우리의 어느 거리가 또다시 처참한 아우성과 피로 얼룩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사회 구석구석을 살펴야 한다. 정치도 투쟁 대신 조금씩 양보한다면 상처는 더 빨리 회복될지 모른다. 혐오와 적대의 주먹이 되지 않도록 서로 손을 맞잡아야 한다. 부디 양극화의 절망이 사라지는 희망의 불씨가 되살려지길 기대한다. 더 이상 평화와 안보가 정치인들의 ‘프로파간다’로 이용돼서도 안 된다. 이번 참사는 오랫동안 우리 모두에게 아픔을 남길 것이다. 다시 한 번 옷깃을 여미자.

이만종 한국테러학회장·호원대 법경찰학과 교수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