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여성폭력은 왜 근절되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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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원 경기도여성가족재단 정책연구실장

“살아서 퇴근하고 싶다”, “강남역 이후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여성이 안전한 세상 더 이상의 희생은 없어야 한다”....

지난 9월14일 밤 ‘신당동 스토킹 살인사건’이 벌어진 서울 신당역 추모공간의 포스트잇에 담긴 시민들의 절절한 목소리다.

여성폭력에 대한 사회의 인식은 예전보다 높다. 1999년 유엔은 여성폭력에 대한 전 세계적 대응이 필요하다는 취지에서 매년 11월25일부터 12월10일까지를 ‘세계 여성폭력 추방주간’으로 지정했다. 우리나라도 2020년 11월25일부터 일주일간을 여성폭력 추방주간으로 지정해 정부 차원의 행사와 캠페인을 한 지 3년째다. 하지만 2022년 오늘, 여성폭력 추방주간을 앞둔 우리 사회 여성폭력 실상은 절망적이다.

경기도의 현실도 다르지 않다.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도내 성폭력 발생 건수는 2019년 6천960건에서 2020년 7천83건, 2021년 7천721건으로 매년 증가하고 있으며, 데이트 폭력 신고 건수 역시 2019년 1만5천289건, 2020년 1만5천383건, 2021년 1만7천134건으로 늘어나고 있다. 스토킹 신고는 2019년 1천388건, 2020년에는 1천108건으로 나타났고,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 제정된 2021년에는 3천740건으로 증가했다.

최근에는 ‘N번방 사건’ ‘제2의 N번방사건’에서 볼 수 있듯이 디지털 성범죄 외에도 온라인 괴롭힘, 그루밍 성범죄 등 온라인 기반 성폭력 양상이 다변화되고 아동청소년 대상 성착취 범죄도 증가하고 있다.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 인하대 성폭력 사망사건 등 여성폭력이 살인 같은 강력범죄로 이어지는 사건도 다수 발생하고 있다.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법을 정비하고 대책을 세우고 시민들은 분노하지만, 여전히 여성폭력은 모양새만 바뀐 채 지속적으로 발생한다. 여성폭력은 왜 근절되지 않는가? 왜 해결되지 않는가?

질문의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우리는 유엔 등 국제기구가 규정한 ‘여성폭력’에 대한 정의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다. 1993년 유엔 여성폭력철페선언, 1995년 베이징행동강령 등에서는 여성폭력을 ‘남녀 간 불평등한 힘의 관계에서 발생해 여성의 종속적 지위를 고착시키고 여성의 인권과 기본적 자유를 침해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즉, 여성폭력은 성차별적인 사회구조 변화 없이는 해결이 어려우며, 여성폭력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성평등한 사회의 실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제3회 ‘여성폭력 추방주간’을 맞이해, 여성의 안전을 염원하는 포스트잇 속 시민들의 목소리를 기억하며 성평등하고 안전한, 새로운 미래를 소망해 본다.

정혜원 경기도여성가족재단 정책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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