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인간은 자신이 놓인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보기 마련인가 보다. “만약 의사 말을 믿는다면 이 세상에 건강한 사람은 없고, 신부 말을 믿는다면 죄 없는 자는 한 명도 없다. 만약 군인 말을 믿는다면 이 세상에 안전한 곳이라곤 어디에도 없다.” 후에 영국 총리를 지내기도 한 솔즈베리가 인도부 장관이었던 시절 제2차 아프간전쟁(1878~1880년)을 앞두고 러시아 위협이 커졌을 때 인도총독이 러시아 위협에 지나치게 민감하다며 경고한 말이다. 물론 그러한 솔즈베리조차도 러시아 위협에 대한 영국의 철저한 대비도 잊지 않고 강조하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의사, 신부, 군인은 각각 자신이 놓인 입장에서 세상을 보고 있는 것이지만 솔즈베리 발언의 의미는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그것만이 다는 아니라는 점일 터이다.
한편 2023년 한국 정치인은 어떤 말을 하는가. 만약 우리 정치인의 말을 믿는다면 우리 사회는 어떠한 모습일까. 정치인은 직업적으로 공정, 정의, 평화, 민생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들이다. 언제 어디서든 정치인은 공정, 정의, 평화, 민생을 말해 왔다. 그러면서도 같은 말을 반복하는 까닭은 아직도 우리 사회가 그러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공정해도 상대는 정의롭지 않다며 공정, 정의, 평화, 민생을 자신만이 독점한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만약 우리 정치인의 말을 믿는다면 세상은 여전히 공정하지도 정의롭지도 평화롭지도 않으며 민생은 언제나 뒷전으로 밀려나 앉아 있기 마련이다. 솔즈베리가 언급한 의사, 신부, 군인의 말은 그들이 본 것과 말한 것이 일치하는 세계지만 오늘날 우리 정치인의 말은 그들이 본 것과 말한 것 사이에 괴리가 있는 세계라는 점이 묘한 대조를 이룬다.
정치학 교과서는 정치가 타협과 조화의 예술이라고 가르치고 있건만 우리 사회가 극심한 대립을 반복하는 것을 보면 우리 정치는 타협과는 거리가 멀고 분열과 적대감 속에 비로소 존재 이유를 찾는 것만 같다. 타협은 기회주의로 폄훼되고 대립적 언사는 선명성으로 미화된다. 공정, 정의, 평화, 민생이 분열된 지지 기반의 그것에 머물러 있다. 따라서 공정과 민생을 내세우면서도 자신의 주장만이 정당하고 상대방의 같은 주장은 기득권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타파의 대상이라고 말한다. 당연히 언제나 타협은 없고 극심한 분열과 대립만이 계속될 뿐이다.
타협의 부재는 곧 정치의 부재를 의미한다.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가 더욱더 성숙하지 못하고 제자리걸음을 하는 이유이다. 솔즈베리와 동시대 인물인 디즈레일리가 원고가 날아갈 정도로 연단을 내리치며 열변을 토해낸 글래드스턴의 연설 이후 연단에 올라 글래드스턴의 열정과 그로 인해 흩어진 원고를 가리켜 비판하며 “그러나 그로 인해 손상된 것은 모두 복구할 수 있다”고 말하며 흩어진 원고를 집어 연단에 올려놓고 나서 연설을 이어간 데서 통합적 정치인의 풍모를 발견할 수 있다. 자신의 주장만이 아니라 국민 목소리를 경청하며 분열이라는 손상을 통합으로 복구하는 디즈레일리와 같은 통합적 리더를 기대하는 것은 사치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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