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불법개설기관이라고 하면 2018년 155명의 사상자를 낸 밀양 세종병원의 화재 참사가 떠오를 것이다. 이 병원은 불법 증·개축으로 내화·방화 설비가 설치돼 있지 않았다. 병원의 적정 의료인은 의사 6명에 간호사 35명이었으나 실제 근무한 의료인은 의사 2명에 간호사 4명에 불과했다. 이는 건축·소방·의료 등 환자의 안전과 관련한 부분은 철저히 외면하고 오로지 비용 부담 최소화와 영리 추구에만 목적을 두고 운영한 전형적인 불법개설기관의 행태였다.
불법개설 병원, 약국(이하 ‘사무장병원’)은 의료기관이나 약국을 개설할 수 없는 비의료인 또는 비약사가 의사나 약사의 명의를 빌리거나 법인의 명의를 빌려 개설·운영하는 의료기관 또는 약국을 말한다.
그간 사무장병원은 정부와 공단의 지속적인 단속에도 불구하고 해마다 증가해 그 폐해가 심각하다. 사무장병원이 끼치는 피해는 세 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우선 지난 14년(2009~2022년)간 적발된 사무장병원으로 인한 건강보험 재정 누수 규모가 지난해 12월 기준 3조4천억원에 달하고 둘째, 수익 창출에만 몰두해 질 낮은 의료서비스와 각종 위법 행위로 국민의 생명과 건강권을 크게 위협하고 있으며 셋째, 의사의 진료권 및 병원 운영권 박탈, 불법 개설에 가담한 의료인을 범죄자로 전락시키고 보험사기 공모 등 각종 불법 행위의 장소로 활용돼 건전한 의료생태계를 파괴하고 있다.
국민의 평생건강을 책임지는 건강보험제도가 영속하기 위해서는 재정 안정화를 통한 양질의 의료서비스 제공이 필수다. 필자가 근무하는 국민건강보험공단 인천경기지역본부는 건강보험 재정 누수의 주요 요인인 사무장병원 근절을 위한 보험자의 역할을 다하고자 여러 방면으로 노력하고 있다. 불법 개설이 의심되는 기관에 대한 치밀한 실태조사는 기본이고 사무장병원의 사전 진입을 차단하는 예방 활동도 활발히 추진하고 있다. 의약계열 학과와 보건의료 관련 학과 재학생 등을 대상으로 불법개설기관의 개념과 폐해에 대해 지속적으로 교육하고 있으며 불법기관의 사전 진입 차단을 위한 지자체 의료기관개설위원회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
특히 올해는 불법개설 신고 활성화를 위해 ‘명소공유’ 사업을 추진 중이다. 불법개설 정황이 의심되는 기관의 명칭과 소재지만 알아도 공단에는 유의미한 자료가 되므로 공급자 단체와 관내 보건소 및 의료기관 종사자 단체 등을 대상으로 불법 유형 및 공익신고·포상금제도에 대한 교육, 간담회를 통해 적극적인 제보를 유도하고 있다.
한편 불법행위로 공단으로부터 편취한 부당이득금 징수율을 제고하기 위해 고강도의 징수 활동에도 주력하고 있으나 수사 결과를 받기까지 평균 11개월 정도 소요돼 지출된 진료비를 환수하기까지 오랜 시일이 걸린다. 그 과정에서 재산 은닉 등으로 징수 효과는 미흡한 것이 사실이다. 결국 계속되는 보험재정 누수에 따라 보험료 인상 등 국민 부담은 가중될 수밖에 없다.
국민의 건강권과 보험재정을 위협하는 사무장병원을 퇴출하기 위해서는 민관이 국민적 피해를 올바르게 인식하고 불법행위 적발에 동참해야 한다. 끝으로 공단의 특별사법경찰 권한 부여 법안도 조속히 통과돼 우리 공단이 보험자로서의 제 역할을 다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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