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겸손의 문을 열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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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승원 한국장애인연기자협회 이사

세계적인 베이스 기타리스트이자 교육자인 앤서니 웰링턴은 어떤 악기를 마스터하기 위해서는 ‘네 가지 의식 단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첫 번째는 무의식적 무지(Unconscious Not Knowing)다. 자기가 모른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단계다. 생일날 장난감 드럼을 선물 받은 어린이가 마구잡이로 치면서도 행복해하는 모습을 떠올리면 된다.

 

두 번째는 의식적 무지(Conscious Not Knowing)다. 내가 모르는 것이 무엇이고, 앞으로 배워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아는 단계다. 자기 실력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건 매우 힘든 일이기 때문에 대부분 취미로 시작한 사람들은 이 두 번째 단계에서 그만둔다.

 

만약 그 고통을 이겨내고 계속해서 배움에 정진하면 어떻게 될까? 조금만 신경 쓰면 멋진 연주를 할 수 있게 되는 세 번째의 의식적 지식(Conscious Knowing)을 가진 프로가 되고, 이 부분을 넘어서면 의식하지 않아도 완벽한 연주가 되는 네 번째의 무의식적 지식(Unconscious Knowing)의 단계에 이른다.

 

웰링턴은 위의 네 가지 단계가 악기를 다루는 과정이라고 말했지만 내가 보기엔 인생이 담겨 있는 통찰이다. 최근 어떤 사람과 일을 같이 했다. 나름 유명한 분의 가르침도 받은 사람이라 실력은 확실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웬걸,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아주 기본도 안 돼 있는 사람이었다. 며칠이 지나고 갑자기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은 강렬한 깨달음이 왔다.

 

‘나는 도대체 알면 얼마나 안다고 그동안 까불고 살았지? 누군가 보기에는 나도 그 사람만큼 모르는 사람일 텐데.’ 그 사람이 열 가지 중 한둘밖에 모르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나 역시 열 가지 중 서너개밖에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일곱 개를 모른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한두 개 가진 사람들을 손가락질하며 마치 나는 모든 것을 통달한 사람처럼 교만했다. 내가 모르고 있다는 것조차 모르는 단계, 서두에 언급한 웰링턴에 따르면 이제 막 걸음마를 뗀 ‘무의식적 무지’의 단계로 살아가는 사람이 바로 다름 아닌 나였다.

 

어떤 의미로 나는 지금까지 한 번도 진정으로 겸손해 본 적이 없었고 수많은 실력 향상의 기회를 교만한 삶의 자세로 놓치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지금이라도 이 사실을 깨달았다는 사실이 너무나 다행이었지만 한편으로는 미칠 듯이 아쉬웠다. 10년만, 아니 5년만 더 빨리 알았더라면 어땠을까, 하필 인생에 있어 이처럼 중요한 사실을 ‘지천명’의 나이가 돼서야 깨닫게 됐다는 사실 또한 참으로 얄궂다. 그래서 ‘철학의 시작’ 소크라테스는 다음과 같은 명언을 우리에게 남겼나 보다.

 

“내가 아는 유일한 것은, 내가 모른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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