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원 불명확 ‘무연고 사망 유공자’ 현황 파악도 안돼 지자체-지방보훈청 서로 “우리 업무 아냐” 수수방관 전문가 “정보 공유 협업 강화·돌봄 서비스 확대” 목소리
보호자 및 거주지가 명확하게 파악되지 못한 채 떠도는 ‘무연고 국가유공자’들이 국내에 얼마나 있는지, 어떻게 사는지 아무도 모른다. 정부와 지자체가 현황조차 파악하고 있지 않을 정도로 무관심해서다. 무연고 국가유공자들의 ‘나 홀로 사망’을 방지하기 위한 특단의 대책이 요구되는 이유다.
■ 현황조차 파악 안되는 무연고 국가유공자
7일 국가보훈부에 따르면 지난 3월 기준 전국 국가유공자는 총 56만5천822명으로 나타났다. 이 중 35만8천628명(63.3%)이 ‘70세 이상’인 고령자다.
이러한 국가유공자 5명 중 1명은 가족 없이 홀로 사는 독거 유공자(11만688명·19.5%)이기도 하다. 경기도민이 2만2천382명(20.13%)으로 전국 17개 시·도 중 가장 많다.
그런데 이 모든 통계 안에 구체적으로 집계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가족이나 주소·직업 등 신원이 불명확한 ‘무연고 국가유공자’에 대한 현황이다. 말 그대로 연고지도, 보호자도 없는 유공자들이기 때문에 전국에 몇 명이나 존재하는지 알 방법이 없다.
문제는 이처럼 ‘셀 수 없는 무연고 국가유공자’들이 홀로 외지에서 사망했을 경우 벌어진다. 통상적으로 국가유공자가 사망할 경우 범죄 경력 등 부적격 조건이 없다면 국립묘지에 이장되지만, ‘무연고 사망자’로만 처리된다면 국립묘지에 가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수원특례시에 주민등록을 해둔 고령의 유공자 A씨가 대구광역시로 이사한 후 주민등록을 이전하지 않았다고 가정하자. A씨는 서류상 ‘수원에 거주하는 고령 유공자’에 해당한다. 그런데 그가 대구에서 사망할 경우 대구시는 A씨를 국가유공자로 분류하지 못한 채 ‘무연고 사망자’로 남길 가능성이 있다. 이 경우 A씨는 국립묘지에 안치되기 위한 심사 대상에 끼지 못하는 문제가 생긴다.
■ ‘떠밀기 식 행정’ 속 소외되는 국가 유공자들
이 같은 일이 발생하는 원인은 보훈기관과 지자체의 소극적인 업무 행태 때문으로 분석된다.
‘보건복지부 장사업무안내 매뉴얼’을 보면, 지자체는 무연고 사망자를 발견할 경우 지방보훈(지)청에 확인해 사망자의 국가유공자 해당 여부를 파악해야 한다. 하지만 경기일보 취재 결과, 일선 지자체는 “보훈기관의 고유 업무”라며 수수방관하는 모습이다.
경기도 등 지자체 관계자들은 “무연고자가 발생했을 경우 대상자가 국가유공자인지는 시〈2022〉군 또는 보훈(지)청에 확인해봐야 한다”며 “지자체가 별도 관리하는 게 아닌 보훈기관의 역할”이라는 입장을 보였다.
그런데 국가보훈부 역시 무연고로 ‘사망’한 국가유공자의 처리가 “지자체의 고유 업무”라는 입장으로 맞서고 있다.
도내 한 지방보훈지청 관계자는 “지방보훈지청에선 국가유공자 등록 및 지원 업무만 하고 있을 뿐 대상자의 가족 관계 등을 분류해 관리하고 있지는 않다. 독거 유공자 중 무연고 여부를 따로 파악하고 있지는 않은 상태”라고 말했다.
아울러 지자체와 보훈기관의 정보 공유 시스템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문제도 있다.
지자체는 현재 사망한 무연고자에 대한 정보 열람 권한을 갖고 있지 않다. 이렇다 보니 보훈명예수당 명단 등을 확인할 때, 국가유공자 여부를 일일이 수기로 파악하는 바람에 오류가 생길 가능성이 있고, 타 지역 국가유공자의 경우 해당 지자체에서 명단을 확보하고 있지 않아 누락될 가능성도 있다.
국민권익위는 과거 49명의 무연고 국가유공자가 발생하자, 상황 재발을 막고자 지자체 행정 업무 포털시스템을 개선해 지자체 장사 업무 담당자가 국가유공자 여부를 간단히 조회할 수 있게 할 것을 권고했다. 하지만 이 같은 권고에도 아직까지 국가보훈부는 지난 2월 전국 각 시·군에 관련 협조 공문을 보낸 것이 전부다.
■ “실태 파악 및 관리 체계 강화 선행돼야”
전문가들은 무연고 국가유공자의 실태 파악 등 현 관리 체계 보완이 우선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김태열 영남이공대 보건의료행정과 교수는 “현재 지방보훈(지)청과 일부 지자체간 정보 공유 부재로 타 지역에 주소를 둔 국가유공자 등 현황이 제대로 파악되지 않고 있다”며 “지방보훈(지)청과 지자체 간 긴밀한 업무 협업 강화로 관련 업무를 위한 정보 공유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어 “정부 차원에서 보훈병원 의료진을 이용한 순회진료 건강 검진 서비스를 강화하고, 지자체도 돌봄 서비스 등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또 독거 국가유공자의 고독사 방지를 위해 지방보훈(지)청과 지자체가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의견도 더해진다.
김현제 대한민국상이군경회평택시지회장·평택시보훈협의회장도 “정부와 지자체가 적극적으로 나서 고독사 방지에 필요한 예산과 제도 등을 확대·마련하고, 독거 국가유공자에 대한 정확한 현황 파악과 관리 체계를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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