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된장찌개와 마라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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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석영 구두 만드는 풍경 아지오 설립인

나는 된장찌개를 좋아한다. 겨울과 여름, 봄 가을 구별 없이 일주일에 한 번 이상은 뚝배기 된장찌개를 즐긴다. 60년 이상 먹어도 질리지 않고 아직도 길 가다 구수한 그 냄새를 만나면 멈춰 잠시 코를 벌렁거리기도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철 모르던 촌놈을 건강하게 키워 줬고 무지몽매한 나를 거센 풍파를 이겨내도록 힘을 보태준 원동력이 된장찌개라 여겨지기 때문이다.

 

얼마 전 대학생들이 카톡에 “마라탕 좋아하세요?”라는 시그널로 저녁식사 초대를 해 왔다. 내게는 생소한 음식이라 잠시 마음을 갸웃거리다 호기심 반 기대 반으로 ‘ㅇㅋ’라 답하고 그들과 마라탕 집에서 마주 앉았다. 독특한 향신료와 색다른 매운맛이 선뜻 입에 맞지는 않았다. 탕수육이나 양장피와는 전혀 다른 중국 음식이었다. 만족감과 흐뭇함에 빠져 폭풍 흡입하는 대학생들을 접하며 잘 먹지 못하는 내가 마치 이방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대가 달라 문화의 차이가 크다는 느낌이었다. 식사 후 커피를 마시며 우리는 BTS 일곱 남자 이야기, 아르바이트하는 매장 주인의 불친절한 태도, 부모님들 잔소리의 이모저모까지 다양한 주제로 대화를 주고받았다. 마라탕 먹을 때와는 달리 즐거움과 진지함을 섞어 시원한 소통의 시간을 넉넉히 가졌다.

 

예나 지금이나 나이 먹은 사람들은 젊고 발랄한 청춘들을 공연히 불안해한다. 걱정과 지적으로 억누르고 ‘맞다’, ‘틀렸다’로 기를 꺾어 놓기도 한다. 그런 다음에는 “다 너희들을 위해서야”라고 이해 안 되는 위로를 건넨다. 신세대들의 희망이나 가능성은 알지 못하면서 근거 부족한 경험치로 대안 없는 문제만 열거한다. ‘꼰대’라는 별칭이 붙을 만 하다. 가만히 보니 나도 영락없는 꼰대다. 나날이 가르침을 빙자한 잔소리가 점점 늘고 있으니 말이다.

 

되돌아보면 학령기에 어른들 충고와 도덕성을 강조하는 스승의 가르침은 마냥 권태롭기만 했다. 오히려 저항의 농도가 짙어지는 요인이었다. 그랬던 우리, 아니 내가 젊은 청춘들을 입으로 지배하는 주체가 돼 있다. 조금은 씁쓸하다. 마라탕을 즐기는 꿈나무들에게 우격다짐으로 된장찌개의 맛과 효능을 설파하는 잔소리꾼이 돼 있다.

 

정치판을 누비는 2030세대들, 참신한 감각으로 시장을 쥐락펴락하는 청년 최고경영자(CEO)들, 지구촌을 들었다 놓았다 하는 뮤지션들....

 

우리가 보듬어 경청하며 힘차게 박수 쳐 주면 희망을 성공으로 바꿀 주인공들이다. 존중과 격려를 테마로 신뢰의 눈빛을 선물하면 신제품 행복으로 보답할 것이다. 꼰대로 말고 어른으로 반듯한 발자국을 남기면 당연히 우리를 어른으로 인정할 것이다.

 

몇몇 초등학생이 잰걸음으로 마라탕집을 향하는 모습이 정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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