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칼린 “지방예술 인식 탈피... 미친 퍼포먼스 보여줘야” [창간 35주년 특별인터뷰]

초연결망 시대 중앙·지방 예술 구분 ‘무의미’ 
지역 예술인들 이미 개인의 발전 방향 파악해
사람들과의 연결… 그 ‘연대’ 힘으로 변화하길

‘박칼린’. 지난 30여년간 언제나 그의 이름 석 자는 화제였다. “이번엔 박칼린이 뭘 한대? 이번에도 박칼린은 그만의 색채를 보여줬나?” 그가 지나간 곳에는 언제나 ‘박칼린’의 인장이 강하게 남는다. 그 역시도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과 이야기를 언제나 의식하면서 살아왔지만, 휘둘리거나 동요하지 않은 채 자신만의 항로를 개척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경기일보는 창간 35주년을 맞아 그 누구보다도 뚜렷한 주관과 틀에 갇히지 않는 행보로 본인의 가치를 대중에게 각인시켜 온 박칼린 음악감독(56)을 만나 지역 문화가 더 넓게 세계로 나아갈 길에 관해 대화를 나눴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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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칼린 음악감독이 경기일보 창간 35주년 인터뷰에서 지역 문화예술계가 나아가야 할 길에 관해 강조하고 있다. 윤원규기자

 

■ 지역사회와의 협업, 늘 경계를 넘나들며

 

박칼린 감독은 평생 어딘가에 머무르지 않았다. 그를 추동하는 힘은 끊임없이 움직이고 언제나 바깥과 교류하고 일해온 데서 찾을 수 있다. 박 감독은 “그 과정에서 가장 중요했던 건 ‘내가 어떻게 하느냐’였다”며 “내가 잘해야 그다음 단계를 볼 수 있었고, 내가 증명을 해야 그다음에 일거리가 들어오는 구조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런 그에게도 체계와 구조가 탄탄하게 잡힌 국공립예술단과 협업하는 건 설렘과 두려움을 함께 안고 가는 도전이었다. 박 감독은 지난 6월29일 수원시립합창단과의 기획공연을 성황리에 마쳤는데, 공연이 끝난 뒤 단원들과 마주하면서 느꼈던 감정들은 공연을 준비하기에 앞서 단원들과 처음 대면했던 순간에 느낀 감정과 많이 달랐다고 전했다. 그는 “서로의 색깔이 다르다고 해서 주저만 하면 안 됐다. 우리는 전문가들이니까 각자 맡은 바를 충실히 수행하기만 하면 톱니바퀴는 어느새 맞물려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라며 “나는 외부인인 데다 단원들도 처음엔 저와 합을 맞추는 데 어려워했지만 공연을 마치고 나니 오히려 서로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마음으로 함께해 왔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고도 마음으로 확인했다”고 설명한다.

 

박 감독에게 중앙과 지역을 구분하는 일은 그다지 의미가 없다. 전 세계는 초연결망 속에서 서로 많은 정보들을 주고받고 있다. 아무리 외진 곳에 있어도 실시간으로 미국에서 또 유럽에서 어떤 공연이 인기를 끌고, 어떤 문화가 유행하는지 알 수 있다. 박 감독은 “지역에 있는 수많은 예술인들 역시 자신이 어떻게 하면 진화할 수 있고, 어떻게 하면 더 나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지 잘 파악하고 있다”며 “지역 간의 경계는 그래서 무의미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 중앙집중 문화예술 생태계에서, 지역이 나아가야 할 길

 

“지방이니까 그렇지 뭐.” “저희 지방인데 어쩌겠어요, 아시잖아요.” “지방인데 이 정도면 훌륭하지.”

 

박 감독이 서울을 벗어날 때마다 현장을 오가면서 들었던 말이다. 그는 “사실 나조차도 공연 준비나 작업이 잘 안 됐을 때, ‘아 역시 지방이니까 그런가’라며 자연스럽게 푸념했던 적이 있다”며 “심지어 지역민들 스스로가 그런 인식에 매몰돼 있는 경우가 많다. 이런 인식 구조 자체를 뜯어고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금도 지역 곳곳에서 땀방울을 흘리며 예술문화의 확산과 부흥을 위해 힘쓰는 이들이 있지만 이들은 치열한 경쟁이 수반되는 세계에서 살아남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스스로 합리화하거나 인정해 버릴 때도 있고, 환경 요인으로 인해 기회조차 마련되지 않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이들이 지역에서 자꾸 한계에 부딪히다 보면, 중앙으로 또 세계로 눈을 돌리고 찾아오는 기회들을 놓치지 않으려고 한다. 인력 유출은 그렇게 진행된다.

 

이에 박 감독은 지역에 팽배한 침체된 생각들을 털고 벗어나는 데 있어 과감한 ‘미친 짓’을 자연스럽게 여기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예술에 지역 구분이 어딨나요. 지방이라서 안 될 건 뭐고, 지방이 아니라서 될 건 또 뭐가 있죠? 그래서 ‘미친 사람’들이 나와야 해요.” 그가 말하는 ‘미친 행위’는 단순하고 명료하다. 누가 봐도 인정할 만한 뛰어난 수준의 퍼포먼스나 결과물을 내놓는 것이다. 박 감독은 “중앙에서 바라볼 때 ‘도대체 지방에서 우리가 생각지도 못한 저런 걸 어떻게 했느냐’라는 말이 나와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때 박 감독은 뛰어난 역량을 갖춘 지역 예술인들과 문화예술계 관련 종사자들이 음지로 숨어버리는 구조를 양산하면 안된다고 지적했다. 공공과 민간을 따로 구분해 책임 소재를 따지는 것 이전에 인식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인 셈이다. 박 감독은 “지자체에서 관련 사업에 예산을 끌어오고, 힘을 쓴다고 해서 간단하게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라며 “일단 물을 엎지른 데 대해 주눅들지 않도록 힘을 실어주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문화예술을 누리는 관객들도 역시 자신이 대가를 지불한 공연에 대해 올바로 인식해야 한다. 박 감독은 “생산자와 수용자가 함께 주고받아야 완성되는 게 바로 예술 아닌가”라며 “예술가를 보러 온 관객들이 ‘서울도 아닌데 이 정도 퀄리티면 충분하지’라는 인식으로 일관하다 보면 지역 간 격차가 결코 좁혀질 수 없다”고 설명했다.

 

박 감독도 늘 전면에 나서진 않지만 적당히 책임을 질 수 있는 위치에서 비틀고 엎지르는 일을 지속해왔기에, 사람과 사람의 연결, 그 연대의 힘으로 만들어가는 변화를 믿는다. 

 

■ 삶을 이 자리로 이끈 원동력

 

그에게 중요한 건 ‘What’이 아니라 ‘How’다. ‘무엇을 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하느냐’에 방점이 찍힌 셈이다. 그 시작점은 부모님이었다. 그는 “부모님의 가르침이 제 인생에 큰 영향을 줬다”며 “무엇이든 헛되지 않게 해야 한다면 똑바로 해야 한다고, 심지어 헛되게 하는 일조차도 똑바로 해내야 하며 심지어 일을 망칠 때도 어중간하게 하지 말고 제대로 완벽하게 망가뜨리라고 알려주셨다”고 설명했다. 

 

성공 가도만 달리는 것처럼 보이는 그의 인생 서사는 사실 성공 대신 ‘도전’의 연속으로 써 내려간 일대기다. 박 감독은 “성공만이 중요하다는 마인드로는 안 된다. 도전 자체로도 소중하다”며 “일단 저질러봤다가 사람도 돈도 기회도 전부 다 잃는다 해도 시도했다는 ‘역사’가 남지 않나”라고 강조한다. 몇 단어로 축약해낼 수 없는 그만의 다채로운 행보를 보고 있으면, 박 감독이 지금껏 살아오면서 그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시도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자연스레 알 수 있다.

 

박 감독이 평생을 지켜온 삶의 철학은 예술계에 몸담은 이들뿐 아니라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많은 이들이 주목했다. 그가 지향하는 삶은 주어진 환경과 상황에 충실할 때 시작된다. 마음에서 우러나와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일들을 ‘제대로’ 해내는 데 초점을 맞추는 게 무엇보다 중요한 셈이다. 

 

박 감독은 매일같이 반복되는 뮤지컬 공연 준비와 연습으로 피로가 쌓인 와중에도 인터뷰 내내 눈을 반짝였다.

 

“인생은 기승전결의 서사로만 흘러가지 않아요. 저마다의 서사 속에서 각자 매 순간 치열하게 살아내고 후회 없이 살면 그만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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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칼린 음악감독

지난 30여년간 90여편의 공연 작품에서 음악감독, 연출, 배우 등으로 참여했으며, 한국이 뮤지컬 불모지였던 90년대 초반부터 음악감독으로 활동하며 국내 뮤지컬의 성장을 함께 이끌어왔다.

 

현재는 뮤지컬, 넌버벌쇼, 퓨전국악 등 다양한 장르의 공연 연출가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연출 대표작으로는 넌버벌 레뷔 ‘미스터쇼’, 퓨전국악 공연 ‘썬앤문’, 뮤지컬 ‘SheStars!’, ‘에어포트 베이비’, ‘렌트’, ‘퀴즈쇼’, ‘라스트 파이브 이어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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