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7년 수원고등농림학교로 개교한 서울농생명대학이 2003년 서울 관악캠퍼스로 이전하기 전까지는 서울농대 혹은 농대로 불리던 수원의 토착 지명이었다. 1980년대 농대 뒤편은 청춘들의 데이트 장소인 푸른지대라는 딸기밭으로 유명했다. 수강생들과 스케치를 왔다. 이곳저곳 스케치 소재를 찾다가 이 멋진 공간을 보석처럼 발견했다. 붉은 벽돌의 박물관 건물과 창업지원센터의 화려한 색채가 뭉게구름을 띄워 놓은 푸른 하늘과 대비를 이룬다. 무엇보다 건물 사이를 연결한 통로는 마치 서태후가 거닐던 이화원의 장랑을 연상케 하는 작지만 멋진 회랑이다.
다만 창업지원센터 1동은 모든 건물이 리모델링 돼 안타깝다. 남아 있는 현관의 고색 원형이 아쉬움을 더한다. 농대 앞 천변의 수양버들이 다 잘려 나간 것처럼 인간에 의해 변형되는 환경 파괴가 너무나 무섭다. 메타세쿼이아를 비롯한 고목들이 원시림처럼 무성하고 느낌 있는 카페도 멋진 공원을 이루고 있다. 이곳은 2019년 아트경기 때 전시작가로도 왔고 경기민예총의 장승깎이 프로젝트에 참여해 상상캠퍼스 앞마당에서 나무를 깎기도 했던 곳이다. 무엇이고 목적을 가지고 와 한곳만 바라보던 것과 장소만 생각하며 아름다움을 찾는 것과는 차이가 있는 듯하다. 마치 공동의 일로 만난 사람의 외양보다 데이트 상대로 정중히 만난 사람의 내면에서 비로소 깊은 속을 볼 수 있는 것처럼. 다시 몇 년이 흐르고 이곳은 또 어떻게 변할지 궁금하다.
추억은 효모 같은 것. 삶이 장독의 메주처럼, 사색에서 길어낸 시처럼 잘 무르익길. 들깨 향기 묻어 오는 가을바람을 바라본다. 메밀밭을 걸어가는 나그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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