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생존권 위협받는 전문건설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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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수 대한전문건설협회 경기도회장

사자와 토끼를 한 울타리에 넣어 놓으면 토끼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렇다고 사자만 혼자 살아갈 수 있을까? 결국 사자도 먹을 것이 없어 죽을 것이다.

 

국가 기간산업인 건설업을 약육강식의 논리로 적용한다면 국가 기반이 무너진다. 강자와 약자가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공생 발전하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국가의 책무이며 건전한 사회일 것이다.

 

정부는 건설산업의 선진화라는 명목으로 지난 2021년부터 종합건설업과 전문건설업 간 상호시장 진출을 허용했으나 약자인 전문건설업체에 공정한 기회조차 주지 못하고 있다.

 

종합업체는 현 기준으로도 아무런 제약 없이 모든 전문공사에 입찰 참여가 자유로운 반면 전문업체는 많은 비용과 시간을 투자해 자본금, 기술자를 추가로 확보해야만 종합공사에 입찰 참여가 가능하다. 현재 전문업체가 종합공사업 등록기준을 충족하는 수는 1%에 불과한 상황이다.

 

전문업체가 종합공사에 입찰하려면 면허 3~5개는 기본이고 10개까지 요구하는 사례도 있다. 현재 1~2개의 전문면허를 보유하고 있는 업체 수가 전체의 90% 이상인데도 말이다.

 

결국 규모가 큰 종합건설업과 대부분이 영세한 전문건설업 간 내부 정쟁만을 부추기고 상호시장 개방으로 인해 수백억원의 대규모 공사를 시공해야 하는 종합업체가 불과 2억원 미만의 전문공사까지 마구잡이식으로 진입해 싹쓸이 수주를 하고 있다.

 

이미 상호시장 개방은 전문업계뿐만 아니라 건설업계 전반이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 지난 7월 리얼미터에서 건설업체 기업인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정부의 상호시장 진출 허용 제도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84.2%로 나타났다. 산업경쟁력 영향에 대해서도 향상되지 않았다는 부정적 의견이 89.7%, 제도 지속 운용 여부도 83.3%가 폐지해야 한다고 응답하는 등 부정적인 평가가 압도적이다.

 

전문건설업계는 지난 12일 정부세종청사 국토교통부 앞에서 대규모의 규탄대회를 열었다. 정부에 끊임없이 제도 개선을 요구하고 있으나 개선되는 사항은 없다. 또 소규모 전문건설업체의 보호제도마저 올해 말 일몰이 예정돼 있기 때문에 정부의 즉각적인 대책 마련을 촉구하기 위해서다.

 

7만 전문건설사업자와 200만 가족이 거리에 나앉기 전에 정부는 중소 전문건설업 보호제도를 조속히 마련해 지역 산업의 근간인 전문건설업의 생존권을 보장하고 더 나아가 기존의 전문과 종합의 업역 체계가 복원되는 건설산업의 정상화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전문건설인이 길거리가 아닌 건설현장에서 땀 흘려 일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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