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함께하는 사회 속 ‘우리’의 의미

image
조원철 연세대 사회환경시스템공학부 명예교수

한때 우리는 ‘목적이 이끄는 삶’에 대해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는 시절이 있었다. 목적을 이루기 위한 방법들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과정, 즉 방법에 따라서는 목적을 이루는 것이 진정한 가치를 상실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은 것을 알게 됐다. 진정한 가치는 자신만의 것이 아니다. 공공성, 즉 우리 모두의 것이어야 하고 다음 시간을 살아갈 후세인들의 것이기도 해야 한다. 나만의 것일 때 문제를 낳는다. ‘우리’가 사라지고 있는 지금의 세태에서 무슨 소리냐고 소리 지를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우리’는 꼭 필요하다. 있을 수밖에 없다. 방구석에서, 그야말로 ‘방콕’하면서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유튜브, 인공지능(AI) 등등. 무슨 일을 하더라도 ‘우리’를 벗어날 수는 없다. 그러한 행태 자체가 ‘우리’의 한 형태인 것을 알아야 한다. 가장 소극적이기에 문제를 가지는 것이다. 정보의 노예가 돼서, 그것도 거짓되고 과장된 정보에 갇혀 자신만의 판단을 근거로 살아가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우리 사회에서 극단적으로 나타나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진정으로 직선으로 사는 사람, 종적으로 사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그것을 추구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외골수의 삶이 아니어야 한다. 그러나 그러한 삶은 오늘 같은 시민사회에서는 결코 바람직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시간을 함께하는 이들과의 횡적인 관계를 맺는 삶의 폭이 있어야 한다. 있게 마련이다. 폭을 넓히면서도 자기를 잘 관리하며 종적으로 직선형으로 살 수 있는 것이다. 자기 삶의 가치를 분명하게 하면서도 이웃과의 관계를 폭 넓게 잘 정립하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다.

 

자기만의 목적, 자기만의 이익을 위한 삶의 형태가 주도하는 오늘의 사회에서 헛소리같지만 함께하는 사회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혼자는 없다. 어떠하든 ‘관계 맺음’이 있다. 그것을 인식하지 못한 삶에서 오늘날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사회적 모든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교육과 종교, 언론과 정치에서 관계를 잘못 인지시키고 있고, 교육과 훈련이 잘못된 것이다. 심각하다. 삶의 지표를 제시해주는 어른이 안 보인다.

 

사회 시스템에서 중요한 것은 자기 역할의 수행이다. 각자의 역할을 제때 다함으로써 기능적 통합을 실현하는 것이 사회 조직이고, 비즈니스 조직이다. 개미가 그러하고 꿀벌이 그러하다. 군대의 합동참모본부의 기능이 그러하다. 국가 조직도 그러해야 한다. 자기 역할을 제때 다하지 못하면 시스템 전체에 막대한 악영향을 주게 된다. 최근의 국가 조직 운영에서 중요 역할을 담당해야 할 사람을 선발하는 과정을 보면 한심하기 그지없다. 그러니 결과는 무능이요 무책임이다. 국민만 녹아나는 것이다. 직책의 역할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그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모르는 사람을 심사(검증)한다고 야단법석이다. 공직자의 가치를 정리할 수 있는 사람을 검증해 선발해야 한다. 정치적 목적 추구가 아니라 진정으로 국민과 국가를 위한 공직 가치를 설정하고 실현하고자 하는 사람, 실현할 수 있는 사람을 선발해야 할 것이다.

● 외부 필진의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