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대화의 풍경, 작품의 단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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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연 독립 큐레이터

한 사람이 자신이 속한 기존 사회에서 또 다른 사회로 귀속된다고 할 때, 그는 새로운 환경과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을 한다. 사회의 적응을 위한 가장 큰 첫 번째 노력은 언어다. 외국을 여행하거나 혹은 유학의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떠나기 전에 그 나라의 언어를 가장 먼저 습득하고 간다. 그리고 한 번쯤 현지인이 되기 위한 노력을 한다. 혀를 아주 매끄럽게 굴리거나, 혀를 유연하게 다룰 줄 아는 전문가가 되어 보기도 한다. 아마도 언어는 매우 유연함과 동시에 예민한 존재일 것이다.

 

또한 새로운 환경 속에서 적응해 가는 것은 언어뿐만 아니라 문화, 생활, 태도 그리고 말투 또한 모방해 간다. 뉴욕에 살기 시작하면서부터 나는 말을 할 때 상대방의 눈치를 먼저 살피고, 내 생각을 제대로 읽었는지, 나의 배경을 궁금해하는지 생각하곤 한다. 내가 진정 그들과 대화하고 소통할 수 있는가? 언어의 박물관이라고 불리는 뉴욕에서 다민족들이 사용하는 언어만 해도 약 170여개, 크게 분류하면 약30개 언어가 사용되고 있다. 뉴욕의 길거리에서는 쉽게 여러 가지 언어들을 들을 수 있다. 영어, 한국어, 중국어, 포르투갈어, 러시아어, 아랍어, 이탈리아어 등 수십 가지 언어들이 뉴욕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 마치 각 나라의 언어가 하나의 예술 작품이라고 생각한다면, 하루에 수십 개의 작품을 보고 듣고 있는 셈이다. 예술의 실천이야말로 다양한 나라 그리고 그 지역 사회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대화’라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대화는 상호 유대성을 외적으로 잘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2011년 아트선재센터에서 필자가 인턴을 하던 당시 전시했던 작가가 불현듯 스쳐 떠올랐다. 바로 ‘김홍석’ 작가다. 김홍석은 협업 작업 속에서 텍스트를 사용하여 예술적, 사회적, 지적 노동을 본인의 작업 속에 교차시키는 시도를 한다. 또한 그는 작가, 관객, 참여자의 관계를 재정의하고 그들의 대화를 자연스럽게 작품에 개입시키는 작가다. 당시 관객 참여형 프로젝트였던 ‘평범한 이방인’ 전시는 5개의 의자만 존재할 뿐, 전시장 안은 고요한 침묵이 맴돌았고, 퍼포머와 관람객이 들어서는 순간 새로운 작품이 재생산됐다.

 

전시의 내용은 작가에 의해 쓰인 텍스트가 퍼포머의 말을 통해 관람객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되는 작품이다. ‘의자, 돌, 물, 사람, 개념’이라는 다섯 가지의 글이 퍼포머들에게 하나씩 전달되고, 작가는 퍼포머들과 그 글에 관해 대화를 나눈다. 작가가 제시하고자 한 작품은 결국 대화를 통해 완성된다. 대화 그 이후에 대해 전해지는 이야기는 작가가 개입할 수 없다. 다른 사람을 통해 전해지는 대화의 내용(narrative)이 결국 또 다른 예술 작품이 된다.

 

작품을 통해 관람자들에게 만남의 장을 제공해 대화하고 소통하게 함으로써 상호관계를 맺고, 작품을 매개로 직접 만나 서로 교류하면서 공감과 유대감을 느끼게 해줬다. 우리는 흔히 사람과 사람이 만나 어떠한 주제를 매개로 해 대화하고 교류하게 함으로써 언어, 정치, 사회와 현실에 대한 삶의 방식을 교환한다. 이곳 뉴욕에 와서 직접 경험했던 일시적, 작은 만남이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는 발판이 되었고, 대화를 통한 소통의 장이 예술의 실천을 성립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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