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지금] 항저우 AG과 중국의 속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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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호 한양대 국제문화대학 중국학과 학과장

중국 저장성 항저우에서 제19회 아시안게임이 개막했다. 이번 아시안게임은 코로나19 팬데믹 종료 이후 중국에서 치러지는 가장 큰 국제행사이자 올해 3월 시진핑 3기 지도부가 공식 출범한 이후 처음으로 홈그라운드에서 개최하는 스포츠 이벤트다. 최근 미중 전략경쟁이 가속화되고 서방국가들의 집중 견제와 압박을 받고 있는 중국 입장에서 이러한 중요한 계기를 그냥 지나칠 리 없다. 지난 9월23일 열린 개막식은 중국이 이번 아시안게임을 통해 외부 세계에 무엇을 보여주고자 했는지를 여실히 보여줬다.

 

우선 중국의 역사와 문화 자원을 활용한 소프트파워를 과시하고자 한다. 개막식 공연에서 남송(南宋)시대의 수도였던 항저우의 문화와 역사를 주제로 하는 성대한 공연을 연출했다. 이번 대회 메달 수상자에게는 꽃다발이 아닌 도자기 형태의 꽃병을 시상품으로 전달할 예정이고 표면에 ‘열매가 결실을 맺다(碩果累累)’라는 뜻을 가진 한자를 표기했다. 또 항저우가 보유한 3개의 세계문화유산에서 힌트를 얻어 대회 마스코트를 선정하는 등 역사와 문화의 도시 항저우를 통해 자국 문화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겠다는 의도를 표출했다.

 

다음으로 친환경과 디지털 강국 이미지를 세계에 발신하고자 한다. 중국은 이번 아시안게임을 저탄소 녹색발전의 친환경 기술을 활용한 디지털·스마트 대회로 치르겠다고 공언해 왔다. 개막식에서 전통 방식의 불꽃놀이를 폐지해 탄소배출량을 줄였고 5G 이동통신기술과 인공지능 및 증강현실(AR) 같은 최첨단 정보기술을 활용한 디지털 성화 봉송 및 점화 방식을 선보였다. 세계적 정보기술(IT) 기업의 본사가 소재하고 있고 2016년 G20 정상회의를 개최한 경험을 가진 항저우가 갖고 있는 스마트시티 구현 능력을 기반으로 중국의 디지털 강국 이미지를 전 세계에 전파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아시아 국가들과의 협력을 강조함으로써 우군으로 확보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중국은 미국과의 전략경쟁에 장기적으로 대비하기 위해 반미 성향의 국가 혹은 개발도상국을 대상으로 경제협력을 강화함으로써 자국의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한 노력을 전개해 왔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개막식 당일 환영 연회에서 아시아 운명공동체를 강조하고 냉전적 사고와 진영 대결에 저항할 것을 호소했다. 또 한덕수 국무총리와의 회담에서 한중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그것이 우리의 정책과 행동에 반영되기를 희망한다고 한 것 역시 같은 맥락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처럼 중국이 이번 아시안게임을 통해 자국의 소프트파워를 과시하고 디지털 강국 이미지를 전파하며 역내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시도는 현재까지는 비교적 성공적으로 보인다. 중국의 역사 문화에 관련된 개막식 공연은 “중국이 중국했다”는 평가를 받을 만 했고 친환경 및 디지털강국 이미지도 국제사회에 긍정적으로 각인됐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아시안게임은 ‘옥에 티’가 보인다. 반정부 시위대에 대한 가혹한 탄압으로 국제사회의 지탄을 받고 있는 시리아 대통령을 만나 일대일로(一帶一路)와 관련된 협력에 서명했다는 점, 세계반도핑기구(WADA)의 징계를 받았던 북한이 인공기를 들고 입장하도록 허용했다는 점 등이다. 중국이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지만 그것이 소프트파워로 연결되기에는 여전히 많은 시간이 걸린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번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우리가 배울 점도 있다.

 

좀 더 주목할 것은 중국이 단순히 과학기술 역량을 과시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주변국과의 협력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동안 중국은 첨단 과학 분야에서 높은 수준의 기술력을 보유했음에도 불구하고 국제사회에서의 평가는 그다지 높지 않았다. 하지만 중국의 과학기술 수준은 미국과 함께 여전히 세계 최고다. 실제로 최근 미국의 과학저널 네이처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중국이 2023년 처음으로 미국을 제치고 과학기술 분야 세계 최고 수준의 논문을 가장 많이 발표하는 나라가 됐고 최근 3년 동안 중동과 아프리카 및 중남미 지역 국가들과의 국제 공동연구가 급증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성과를 이끄는 원동력은 국가 차원의 관심과 연구인력의 배양 그리고 과감한 예산 투자일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2024년 과학기술 분야의 연구개발 예산이 축소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는 우리의 현실에서 중국의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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