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관광여비로 변질된 지방의원 역량개발 예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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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철 법학박사·전 국회 수석전문위원

2023년 국회 국정감사가 마무리됐다. 국감이 끝나면 각 상임위원회와 예결위원회는 2024년도 예산안에 대한 사전 심의에 들어간다.

 

국회 예산 심의에서 지방의회 의원 역량개발 예산의 존폐가 적극 검토되길 바란다. 2022년도 결산 기준, 우리나라 243개 지방의회에서 의원 역량개발 관련 경비, 즉 국내외 여비, 역량개발비 등으로 총 284억5천800만원이 지출됐다.

 

역량개발 예산은 말 그대로 의원의 의정역량을 제고하기 위한 교육 및 연수 등을 위한 경비다. 의원 교육 및 연수는 민간에 위탁해 진행된다. 그런데 이 예산이 부적절하게 집행된 사례가 너무 많다. 그동안 언론에 보도된 내용들을 보면 의정역량 강화를 위한 교육이나 연수가 아니라 의원들의 유흥을 위한 관광경비로 변질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교육이나 공부는 구색 맞추기로 잠깐, 나머지 시간과 돈은 관광과 유흥에 쓰인다.

 

민간위탁 역량개발 예산은 자치 경험이 일천했던 지방자치제 초기에는 어느 정도 명분이 있었다. 그러나 지방자치제가 부활된 지 30년이 지난 현 시점에 그 명분이 아직도 필요한지 의문이다. 지방자치 선진국인 영국이나 미국 등은 지방의회 의원들이 역량개발이라는 미명 아래 국내외 연수 등의 나들이를 하는 사례가 없다. 선진국의 지방의회 예산에는 의원들의 해외연수비는 물론 국내연수비도 없다.

 

우리나라에서만 의원 역량개발이란 이름으로 예산을 세우고 연수를 간다. 해외연수는 물론 국내까지도 의회 스스로가 아닌 민간업체에 위탁해 행해진다. 의원 역량개발 사업은 명분이나 내용에 있어 당위성을 찾기 힘들다. 왜 멀리 가야 하는지, 왜 연수라는 이름으로 딴짓을 하는지 모르겠다.

 

민간단체 위탁 연수는 국내의 경우 제주도, 부산 해운대 등 풍광 좋은 관광지에서 2박3일 정도 진행된다. 강사는 민간단체에 전속된 사람들로 전문성이 공인됐다고 보기 힘든 사례가 많다. 해외연수도 민간단체(관광업체)에 맡긴다. 해외 경비는 국민 세금으로 책정된 예산을 기본으로 하고 먼 나라 연수 시 추가 비용은 의원들이 자부담하는 형식이다.

 

의원 역량개발 사업을 민간업체에 위탁하는 것은 명분이 없을 뿐 아니라 그 내용도 역량 제고를 위한 연수라기보다 관광성이다. 언론에 보도된 기사를 보면 그 행태들이 낯뜨겁고 한심스럽다. 술 파티는 기본이고 성희롱 등 추태가 비일비재하다. 때문에 국민 세금으로 나라 망신 시키고 다닌다는 비난이 거세다.

 

의원들의 자치의정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전문가를 초빙한 자체 교육이나 공공기관 연수를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 의원이 자치에 관한 정책 개발 및 결정의 주도자가 되도록 가이드하는 것이 올바른 방향이다. 반면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민간단체에 위탁해 실행하고 있는 국내외 연수사업은 폐지해 세금 낭비를 막아야 한다. 의원들의 역량은 강화돼야 하지만 관광성 국내외 연수는 필요가 없다. 300억원 가까운 의정 역량개발 예산은 의원들 콧바람 쐬라고 주는 게 아니다. 차라리 삭감하는 게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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