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경제 논리에 매몰된 소방시설 설계…이제는 변화해야

유종윤 남양주소방서 재난예방과 소방민원팀 소방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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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 시 작동하는 소방시설은 그 어떤 건축설비보다 신뢰성과 효과성의 확보가 중요함은 논쟁의 여지 없이 당연하다. 이를 위해 화재 감지의 신뢰성과 효과성이 높은 아날로그 방식의 감지기 등 우수한 성능의 감지기가 개발됐고 화재를 조기에 진압‧제어가 가능한 조기반응형 헤드 및 라지드롭형 헤드 등이 개발됐다.

 

그러나 이러한 우수한 소방시설은 실제 건설현장에서는 경제 논리에 매몰된 비용 위주의 소방시설의 설계‧설치로 외면받고 있다. 그 결과 지난 수십년간 소방설비의 발전이 무색하게도 여전히 소방시설의 신뢰성과 효과성의 확보가 묘연한 상태다.

 

건물에 화재 경보가 울려도 재실자들은 화재감지기는 늘 오작동하는 ‘양치기 소년’처럼 생각해 바로 대피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또 화재가 발생했을 때 스프링클러가 설치돼 있어도 인명 피해를 막지 못하고, 심지어 건물 전체로 연소 확대되는 경우도 상당하다.

 

실제로 최근 건물 내 구획실에서 화재가 발생해 화재감지기와 스프링클러가 모두 작동했음에도 불구하고 재실자의 생명을 지켜내지 못한 경우가 있었다. 이는 소방시설이 적법하게 설치‧관리됐는지와는 별개로 결과적으로 건물 내 설치된 화재감지기와 스프링클러의 반응 속도 및 효과가 생명을 지켜내기에는 부족했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일반 감지기(차동식 열감지기)와 일반 스프링클러 헤드가 아닌 아날로그식 감지기와 조기반응형 스프링클러 헤드 같은 더 욱성능이 우수한 소방시설들이 설치돼 좀 더 빠르게 화재를 감지하고 효과적인 소화가 시작됐다면 소중한 생명만큼은 지켜낼 수 있었을지 모른다.

 

이제는 더 이상 소방시설이 작동했음에도 화재 피해를 막아내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하지 않도록 소방시설이 경제 논리가 아닌 신뢰성과 효과성을 최우선으로 해 설계‧시공되도록 변화해야 한다.

 

이를 위해 우선 설계자는 경제 논리가 아닌 공학적 합리성과 타당성을 기본으로 소방시설을 설계하고 이러한 소방시설이 설치되도록 소방기술인으로서 건축주를 설득해야 한다. 건축주는 비용 절감이라는 근시안적 경제 논리에 매몰된 시각으로 건물을 짓는 것이 아닌 실제 사용자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건축물의 근본 목적을 달성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행정에서는 소방시설이 합리성과 타당성을 바탕으로 설계‧시공되는 환경이 조성될 수 있도록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가령 우수한 소방시설을 자율적으로 적용한 건축물에는 ‘우수소방시설 적용 건축물 인증서’를 발급하거나 소방시설의 성능과 건축물의 화재보험 비용의 연계성이 높아지도록 제도를 정비하는 방안, 우수 설계업체에는 실적 평가 등에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 등을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이다.

 

2024년에는 후진적인 화재 사고로 인한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는 뉴스를 보지 않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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