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끝에 와 닿는 촉촉한 꽃 내음, 길가의 풀잎이 봄비에 더욱 파릇하다. 아침부터 쏟아지는 이슬비에 야외 스케치를 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의외로 모두 참석했다. 긴 겨울을 지나며 바깥 나들이를 가고픈 마음이 비가 오고 황사가 친다고 해도 큰 장애가 되지 않았나 보다.
함께 우산을 쓰고 공원길을 걸었다. 직원에게 양해를 구하고 산림전시관 테라스에서 비 오는 바깥 풍경을 들여놓았다. 한눈팔 겨를 없이 진지한 모습, 언제 어디서 하루의 세 시간쯤을 잘라내어 온 마음을 집중할 수 있겠는가. 스케치북이 모이고 자신만의 개성 있는 그림들이 다양하고 느낌 있게 펼쳐졌다. 산수유도, 진달래도, 매화도, 연둣빛 버드나무도 봄비에 더욱 산뜻하다.
그 가운데 이름 모를 꽃 무리가 눈에 들어왔다. 개나리처럼 길게 늘어선 관목인데 하얀 꽃이 매화를 닮았다. 학명이 미선나무다. 이름도 예쁘고 향도 진한 이 꽃은 한국의 고유종이라니 더욱 귀하게 보인다.
‘모든 슬픔이 사라진다’는 꽃말처럼 이 봄이 그랬으면 좋겠다. 나는 미선을 닮은 매화를 그렸다. 매화는 고전적인 향기가 있다. 매화를 사랑한 퇴계 선생은 임종 때 “매화에 물 주어라”고 유언하셨다고 한다. 대피소에서 그림 평을 마치고 함께 밥도 먹고 커피도 마셨다.
화무십일홍, 한나절을 동여맨 오늘이 인생의 가장 소중한 봄날이다. 보티첼리의 세 개의 그림에 소리의 색채를 입힌 레스피기의 관현악곡 봄을 듣고 싶은 봄봄봄이다.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