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아, 그 뚜껑을 밟지 마오”… 블랙홀 하수구 ‘섬뜩’ [현장, 그곳&]

안전장치 없이 고무판 하나 달랑... 전문가 “위험 평가·사고 대비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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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수원특례시 장안구 정자동의 한 하수구가 보이지 않게 가려져 있는 모습. 박소민기자

 

16일 오전 10시께 수원특례시 장안구 정자동의 한 거리. 이곳에 설치돼 있는 하수구는 고무판으로 덮여 있어 실체가 가려진 모습이었다. 고무판을 들춰본 뒤 확인한 하수구 내부에는 낙상 시 피해를 예방할 수 있는 어떠한 안전장치도 찾아볼 수 없었다.

 

같은 날 오후 의왕시 삼동 거리에 있는 하수구도 비슷한 모습이었다. 하수구 내부를 살펴본 결과, 1m 남짓하는 높이가 훤히 들여다 보였지만 어떠한 보호장치도 설치돼 있지 않았고 이 사실을 모르는 시민들은 그 위를 무심코 걸어가고 있었다.

 

이곳을 지나가던 서민희씨(가명‧31)는 “하수구 위를 지나가는 데 순간적으로 ‘덜컹’ 소리가 나 우연히 내부를 보게 됐다”며 “뚜껑이 열리거나 파손되면 그대로 떨어진다고 생각하니 섬뜩해 앞으로는 하수구를 피해 다녀야겠다”고 불안해했다.

 

경기도내 하수구가 어떠한 안전장치도 없이 방치돼 있어 피해를 키울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날 경기도에 따르면 침수 피해 집중관리 시설은 도내 31개 시‧군 중 12개 지자체 내 총 23곳으로, 해당 지역에서는 침수 해소 사업이 진행 중이다. 침수 해소 사업이란 침수 원인을 파악하고 침수가 발생하지 않도록 공간 확장 및 펌프장 신설 등이 이뤄지는 것을 말한다. 이중 7곳은 침수 해소 사업이 완료됐으며 6곳은 사업이 진행 중, 나머지 10곳은 아직 설계 단계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도는 정작 침수 방지를 위해 가장 기본적으로 설치하는 하수구 관리에는 손을 놓고 있다.

 

도는 인력 문제를 이유로 침수 피해가 발생한 지역을 지정해 1년에 한 번 하수구 관리를 하고 있는 실정이다. 나머지 하수구에 대해서는 시·군에서 자체적으로 용역을 맡겨 관리가 이뤄진다지만 지자체 조차도 하수구 설치 개수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기본적인 안전장치 없이 설치된 하수구가 홍수 발생 등으로 인해 개방될 시 인명 피해로 이어지기도 한다.

 

실제로 지난해 10월26일께 부산시 영도구의 한 도로에서 50대 여성 A씨가 하수구에 빠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피해 여성은 갈비뼈가 골절되는 중상을 입었다.

 

정종수 숭실대 안전재난관리학과 교수는 “홍수가 발생했을 때 하수구가 열릴 경우 그대로 빠지는 사고가 발생할 수도 있다”며 “지자체는 전문가를 동원해 재난을 중심으로 한 위험 평가를 실시하고 안전사고를 대비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에 대해 도 관계자는 “아직 하수구 내 보호망 설치에 대한 계획은 따로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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