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한글날과 훈민정음날

이만식 경동대 교양교육부총장·시인

image

한글날 제정 기준에 대해 ‘가갸날이어야 한다’, ‘날짜를 변경해야 한다’는 등 나름대로의 주장들이 있어 왔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훈민정음을 만든 날과 공표한 날 중 어느 날로 할 것인가의 관점 차이지 가치의 문제가 아니다. 창제는 문자를 말하고 반포는 이 문자에 대한 문서나 책이다. 이참에 정리해보자.

 

창제일을 먼저 짚어보자. 세종실록 25년(1443년) 음력 12월30일자 기록이 유일하다.

 

그해 12월조에 “이달에 임금께서 몸소 언문 스물여덟 글자를 만들어내니...이것을 훈민정음이라 부른다(是月上親制諺文二十八字...是謂訓民正音)”라고 했다. 정인지 서문에도 ‘계해년 겨울’로 돼 있으니 이론의 여지가 없다.

 

반포일을 살펴보자. 훈민정음 원본으로 보이는 책이 1940년 안동 퇴계가에서 발견돼 간송 전형필 선생이 소장함에 따라 반포 실물을 알게 됐다. 1962년 국보로, 199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된 그 해례본(구분을 위해 이리 칭함)이다.

 

세종실록 28년(1446년) 병인 9월조에 “이달에 훈민정음이 이뤄졌다(是月訓民正音成)”라고 밝혔다.

 

여기서 ‘훈민정음’은 책을 뜻하고 이를 완성했다는 기록이다. 해례본의 끝에 붙인 정인지의 글에서도 “正統十一年 九月 上澣......臣鄭麟趾 拜手稽首謹書”이니 정통 11년은 1446년이고 상한은 상순이라는 말이다. 명확하니 또 이론이 있을 수 없다.

 

창제와 반포를 정리하면 1443년 음력 12월 겨울에 세종이 친히 문자를 만든다. 이 훈민정음 문자를 이론적으로 다듬고 풀이해 3년 뒤 1446년 음력 9월 상순 가을에 ‘훈민정음’이라는 책을 편찬해 알렸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현재 한글날은 훈민정음 반포일을 기준으로 삼은 것이다. 현대의 성문은 대개 반포로 한다. 헌법이 그런 예다.

 

9월 상순 끄트머리 날을 서양 달력 그레고리력 양력으로 환산해 10월9일을 한글날로 정했다. 1926년 기념한 ‘가갸날’(음력 9월29일)을 1928년부터는 ‘한글날’로 명칭을 변경했다.

 

훈민정음을 현대의 동의어로 하자면 한글이 옳다. ‘한’은 ‘큰, 하나, 가운데’라는 뜻이 있고 한(韓)과 음이 같은 토박이말이니 훈민정음을 바꿔 부르는 데 제격이다. ‘가갸날’보다야 의미 있고 정체성과 보편성이 있다.

 

알고 보면 북한이 정한 기념일이나 각 학자가 주장하는 차이는 만든 날, 알린 날, 양력 환산 방법의 다름이다.

 

사실 필자는 날짜나 명칭을 보다 정확히 하기 위해 명칭은 ‘훈민정음날’로, 일자는 음력으로 ‘9월10일(반포)’, 또는 ‘12월30일’(창제 중간인 15일도 무방)로 하자는 생각이다.

 

추석이나 설날, 부처님 오신 날도 음력 아닌가. 둘 중 하나를 정하자면 후자 섣달그믐 제야다. 설날과 연이어서 좋다. 훈민정음이 탄생한 다음에야 겨레의 문화가 비로소 새날이 됐으니 설과 상통하지 않은가. 여기에 세계적인 문자 역사도 당겨진다.

 

그러나 현재 ‘10월9일 한글날’도 일리가 있으므로 굳이 개정해야 할 사안으로는 보지 않는다. 만약 재논의가 있다면 ‘음력 12월30일, 훈민정음 날’이 더 합리적이라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 외부 필진의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