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제 인천언론인클럽 명예회장
문화예술과 행정 사이에 ‘거리 두기’가 필요할 것 같다. 인천시 패착으로 예술지대가 ‘술판 논란’에 휩싸여 간판을 붙였다 떼는 등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연출되고 있다. 최근 H동 벽체 유리에 새롭게 장식됐던 ‘인천맥주 호랑이’란 커다란 간판 글씨가 온갖 질타를 받고 곧바로 지워졌다.
그러나 문화공간임에도 시민 누구나 이용하기 어려운 폐쇄공간이 됐다. 술집으로 바뀐 상태라 낮엔 문을 닫고 오후 4~5시부터 밤늦은 시간에만 영업하기 때문이다.
15년간 예술창작 산실 역할을 하는 인천아트플랫폼의 H동에서 운영되던 서점이 문을 닫고 맥줏집으로 변신하더니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 차 마시며 책 읽던 열린 공간이 청소년 이용이 어려운 ‘19금 공간’으로 변질한 것이다. 주변에 주점시설이 즐비한데도 문화공간과 동떨어진 맥줏점을 입점시킨 발상을 납득하기 어렵다.
과연 시 의도대로 ‘전문 예술인 아닌 일반 시민을 위한 공간’으로 탈바꿈시키고 있나? 지난해 시민과 예술가를 이분화해 대립시키면서 일이 꼬이지 않나 싶다. 2009년 문을 연 인천아트플랫폼은 말 그대로 예술창작자를 끌어모으는 기차역 승강장과 비슷한 ‘예술플랫폼’으로 출발했다. 그간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부분도 있었지만, 미술을 매개로 문화거점을 구축하면서 쇠퇴하던 원도심에 활력을 불어넣은 것으로 평가받는다.
이런 취지나 성과를 무시하고 인천아트플랫폼 ‘레지던시(예술인 입주공간)’ 기능을 없애려 하면서 황당한 사태가 빚어지고 있다. 지난해 서점의 운영 중단 소문이 나돌자 공예인, 사진작가 등이 입주하려고 물밑 경쟁이 치열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시 입김으로 이들 대신 유명 커피점을 유치하려다 반발을 샀고, 결국 ‘뮤직갤러리’ 운영을 명분 삼아 주류판매업자를 새 입주자로 선정했다. 음악공연과 술이 어우러지면 ‘일반 시민’이 북적대리라는 기대가 작용했다. 그렇지만 주로 낮 시간대 인천아트플랫폼을 찾는 시민들을 외면한 채 저녁 시간을 선호하는 청년 또는 성인 일부를 위한 공간으로 운영되고 있다.
새 사업자는 H동 유리 벽체를 뚫어 철문을 설치하는 등 시 건축자산을 멋대로 훼손하고, 일반음식점인데도 음향시설을 갖춰 춤판을 벌여 빈축을 샀다. 서점 운영자보다 점유공간을 더 많이 차지한 주점엔 임대료를 대폭 낮춰줘 특혜 의혹까지 받는다.
H동 서점 운영자를 바꾸는 과정에서 첫 단추를 잘못 끼워 문화행정이 갈팡질팡한다. 인천문화재단도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한 채 눈치만 보고 있어 답답하다. 시는 문화예술영역에 ‘지원은 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팔길이 문화정책 기본으로 돌아가 “무엇을 도와드릴까요”라고만 물어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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