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오디세이] 한 사람의 언어라는 세계

윤경원 세종사이버대 한국어학과 교수·한국어교육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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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가 의사소통을 위해 사용하는 말과 순간순간 드는 일련의 생각들은 마치 하나의 신경처럼 연결돼 있다. 듣거나 읽은 것을 머릿속으로 상상하기도 하고, 스스로 떠올린 단편적인 생각의 조각들을 나름대로의 체계로 엮어 말이나 글로 표현하기도 하니 말이다. 그런 걸 보면 인간의 언어와 사고야말로 일심동체인 듯하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의 언어가 사고를 지배하는 것일까 아니면 사고가 언어를 통제하는 것일까. 이와 관련한 학술적 논의 중 하나가 바로 사피어-워프 가설이다. 이는 언어적 상대성을 주장하는 것으로, 그것을 지지하는 관점에는 인간의 언어가 사고를 결정한다는 강성론적 입장과 언어가 사고에 크든 작든 영향을 준다는 중도적 입장이 공존한다. 언어와 사고에 관한 이러한 학술적 논의는 사실 정교하게 검증하기 쉽지 않아 여전히 언어학적, 심리학적 난제로 남아 있다. 그렇지만 부정할 수 없는 것은 인간의 언어와 사고는 명백히 긴밀한 상호작용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캐나다의 드니 빌뇌브 감독은 ‘컨택트’(원제 ‘Arrival’·2017년)라는 작품에서 풍부한 상상력을 기반으로 흥미로운 이야기를 펼쳐 놓는다. 이 영화에서는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비행물체 안의 외계 생명체와 인간이 소통하는 과정을 핵심 서사로 삼는다. 세계 각국의 사람들은 저명한 언어학자와 과학자를 섭외해 외계 생명체에게 인간의 언어를 가르치는 방식으로 외계의 도형 문자 패턴을 발견하고 그것을 해독하며 서로 소통한다. 그러던 중 지구에 온 목적을 묻는 질문에 외계 생명체가 ‘무기를 주다’로 답하자 각국 정상은 일대 혼란에 빠진 채 전투태세에 돌입한다. 다행스럽게도 돌이킬 수 없는 일촉즉발의 상황에 이르렀을 때 한 언어학자에 의해 외계 생명체가 표현한 ‘무기’란 ‘선물’을 의미한 것이란 사실이 밝혀진다. 가상의 스토리로 엮어낸 영화이지만 기본적으로 이러한 갈등은 사람들이 인간의 언어 사용 방식대로 외계 생명체의 언어를 이해하려 들었기 때문에 발생했다. 과연 언어가 인간의 사고를 지배한다는 사피어-워프 가설의 방증처럼 보이기도 하는 대목이다.

 

그런데 이러한 언어 사용으로 발생하는 오해와 불통의 문제는 일상생활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 누군가가 제습기가 필요하다고 할 때 대부분의 사람은 습기를 제거해 주는 기계를 떠올리겠지만 어떤 사람들은 습기를 흡수해주는 제습제를 떠올리기도 하고, 누군가에게 방향을 가르쳐줄 때 어떤 사람들은 먼 곳을 가리키면서 ‘저쪽’이 아니라 ‘이쪽’으로 안내하기도 하며, 어떤 이들은 다르다는 말을 틀리다로 인식하기도 하니 말이다. 그것은 대부분 가벼운 해프닝 정도로 생각할 수 있지만 때로는 극단적인 갈등과 그로 인한 관계의 단절을 야기하기도 한다. 그것은 우리가 같은 언어권이라도 각자 생활하는 상황과 맥락은 다르며, 그에 따라 자기만의 사고 체계 안에서 구축된 자신만의 세계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각자 서로에게 외계 생명체와도 같기 때문이다. 이렇게 본다면 과연 누군가의 말처럼 한 사람을 만나는 것은 한 세계를 만나는 것과 다름없다. 그 세계를 만날 때, 그 세계와 소통하기 위해서는 그 세계의 언어 체계와 사고 방식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필수적이다. 지금 내 주변의 사람들은 과연 어떤 세계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일까. 그리고 나는 그들에게 어떤 세계의 사람일까. 언어가 사고를 지배한다면 그들의 언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세계 안으로 기꺼이 뛰어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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