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면서] 역사 현장에서 찾아낸 희망

오선경 성공독서코칭센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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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대상이나 새로운 걸 보면 탐색 및 관찰하는 걸 좋아하는 기질적 특성에 더해 어려서부터 일상에서의 지적 탐구나 문화예술 향유 체험을 함께해주신 부모님의 영향을 받아서 그런지 어딜 가든 방문지에 있는 문화유산이나 역사 공간을 살펴보게 된다.

 

최근 방문지 중 한 곳인 안동에서는 공식 일정 전후로 여러 곳을 둘러봤다. 그중 예끼마을과 임청각은 처음 간 곳이다. 업무차 한국국학진흥원을 여러 번 다녀왔음에도 그 바로 앞에 예끼마을은 이번에야 알게 됐다. 마을 곳곳에 벽화와 트릭아트 그림이 그려져 있고 옛 지명을 따온 선성현문화단지 안에 동헌이나 객사 등이 자리 잡고 있었다. 1974년 안동댐 건설로 살던 곳이 수몰된 마을 사람들을 위해 조성된 곳이라는 사연은 역사관을 통해 알 수 있다.

 

안동호 위에 부교로 만들어진 선성수상길이 유명해서 걸어 봤다. 부교의 중간쯤에 책걸상과 풍금 조형물 등 수몰 지구 내에 있던 초등학교 교실을 재현해 둔 쉼터가 있다. 한때 수많은 아이가 뛰어다니던 곳에 조용히 출렁이는 물소리만 들리니 쓸쓸한 느낌이 들었다. 국가 발전과 공공의 이익을 위해 조상 대대로 살던 터전을 내놓고 하루아침에 사방으로 흩어져야 했던 사람들의 심정이 어떠했을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갈 때마다 들를 기회가 없던 임청각도 이번에는 다녀왔다. 국권이 일제에 의해 찬탈된 후 독립운동에 헌신한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 이상룡의 집이다. 온 일가와 전 재산을 국가와 민족을 위해 내놓을 때의 심정이 어땠을지, 감히 흉내 내기 어려운 숭고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방문지인 제주도에는 ‘너븐숭이 4·3 기념관’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숙소 근처에 있어 우연히 들르게 됐다. ‘제주 4·3 평화공원’은 익히 알고 있었으나 4·3 관련 다른 기념관이 있는 줄은 몰랐다. 정보를 찾아 보니 제주도 내에 4·3 유적지가 600여곳에 달하고 관련 기념관도 다섯 곳이나 됐다. 북촌리 너븐숭이 일대가 현기영 작가의 작품, ‘순이 삼촌(군경에 의한 양민 학살의 현장에서 살아남은 자가 평생 그 트라우마로 고통받다가 결국 세상을 등진다는 내용)’의 무대라는 것도 이번에 처음 알았다. 기념관의 공간 구성이나 전시 콘텐츠는 동영상 및 사진과 글로 정보를 나열하는 방식이었기에 특별할 게 없었다. 그러나 실상은 그리 단순하지 않았다.

 

제주 4·3은 서로 다른 이념에 의해 같은 민족끼리 죽고 죽이는 비극을 넘어 국가폭력에 의해 저질러진 학살이 얼마나 잔인했고 무도했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건이다. 북촌도 마을 전체가 소각됐고 군의 총에 의해 죽은 희생자의 수가 수백명에 달했다. 희생된 아이들의 애기무덤들을 보면서 가슴에 미어졌는데 가장 많이 죽은 연령대가 유아부터 10대 이하 아이들과 60대 이상의 노약자라는 기념관 관계자의 설명을 듣는 순간 숨이 막혔다. ‘군에 들어와서 사람을 죽여본 적이 없으니 경험 삼아 죽여 보자’는 이유로 방어권을 갖지 못한 양민들이 오전부터 오후 4시까지 끊임없이 울리는 총성 속에 차례차례 끌려가 죽고 그 모습을 봐야 했다니. 상상하기조차 힘든 비극의 현장이었다.

 

이런 비극은 되풀이되면 안 되는데 국가 권력에 의해 국민이 희생되거나 힘들어지는,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슬퍼지는 요즘이다. 하지만 공공의 이익과 나라를 지켜내기 위해 자신을 내놓은 백성과 국민 또한 우리 역사 내내 존재했고 현재까지도 흘러넘치고 있으니 희망을 보게 되는 요즘이기도 하다. 민주공화국의 국민으로서 주권을 지키고 정당하게 행사하려는 의지를 잃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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