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안은 어느 시설물에 설치할까? [이강웅의 수원화성이야기]

‘적 감시’ 방어가 필요한 옹성·치성·원성에 ‘현안’

현안은 치성의 외면에 설치한다. 이강웅 고건축전문가
현안은 치성의 외면에 설치한다. 이강웅 고건축전문가

 

화서문을 성 밖에서 보면 반원형 서옹성과 높은 서북공심돈이 보인다. 옹성과 공심돈의 벽면을 따라 위에서 아래로 파인 긴 홈을 볼 수 있다. 이것을 현안이라 한다. 현안도설에 “현안이란 적을 감시하기 위해 만든 성의 부속 장치다”라고 기록돼 있다. 성 바로 앞까지 접근한 적을 감시하는 것이 주기능이다.

 

이런 현안을 어느 시설물에는 설치했고, 같은 시설물임에도 불구하고 어느 시설물에는 설치하지 않았다. 근본적으로 “현안은 어느 시설물에 설치하는 것일까?”라는 의문이 생긴다. 이 의문을 풀어볼 예정이다. 현안 설치대상으로 현안에 대한 기본적인 문제다.

 

■ 현안 설치 유무…시설물의 정체성과 관련

 

정조는 화성성역 착공 2년 반 전 정약용에게 성역에 필요한 기본계획 작성을 지시한다. 1년 후 ‘성설’을, 다시 6개월 후 ‘도설’을 완성한다. 성설은 성 쌓기에 대한 기본계획이고, 도설은 옹성, 현안, 오성지, 거중기, 그리고 시설물 선축에 대한 기본계획이다. 이 중 성설은 정조가 만든 “어제성화주략”이란 이름으로 공포한다.

 

의궤에는 현안 설치대상 시설물에 대한 기록이 없다. 현안에 대한 것은 의궤가 아닌 도설 중 현안도설을 참고할 수밖에 없다. 정약용은 현안도설에 “옹성과 모든 치성의 앞면에 현안을 각각 몇 개씩 설치합니다”라고 제안한다. 간단명료하다. 현안을 설치할 시설물 대상 기준은 ‘옹성’과 ‘모든 치성’이다. 설치 수량 기준은 각각 몇 개씩이고, 설치 위치 기준은 치성의 앞면이다.

 

현안은 치성 바로 밑에 도달한 적을 감시하는 장치이다. 이강웅 고건축전문가
현안은 치성 바로 밑에 도달한 적을 감시하는 장치이다. 이강웅 고건축전문가

 

준공도서인 화성성역의궤 내용과 실제 화성을 살펴보면 정약용의 제안을 철저히 따른 것으로 나타난다. 실제로 ‘옹성과 모든 치성’에, ‘전면’에 현안을 설치했다. 시설물 별로 자세히 살펴보자. 먼저, 옹성 4곳이다. 북옹성, 남옹성, 동옹성, 서옹성이다. 모두 현안을 설치했다. 다음, 치성 21곳이다. 치성은 적대 4곳, 포루(군졸) 5곳, 치 8곳, 그리고 남공심돈, 서북공심돈, 봉돈, 동북노대로 21곳이다.

 

따라서 현안을 설치한 시설물은 옹성 4곳과 치성 21곳으로 모두 25곳이다. 옹성과 치성에는 하나의 예외 없이 제안대로 정확히 설치했다. 화성에 시설물 수가 60곳이므로 비율로는 전체 시설물의 42%가 되는 셈이다. 거의 반에 육박한다.

 

문제는 같은 시설물 중 현안을 설치하지 않은 시설물에 있다. “이 시설물에는 왜 현안을 설치하지 않았느냐?” “설치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이냐?”에 대한 논란이다. 현안을 설치하지 않은 시설물과 그 이유를 밝혀본다. 대체로 시설물의 정체성과 관련이 있다. 이래서 의궤 해석에 정확한 정의가 중요한 것이다.

 

첫째, 포루(대포) 5곳에 현안이 없다. 포루는 성에서 돌출된 전체를 벽돌로 지은 시설물이다. 성 밖 지면에서 성 높이까지 내부를 비워서 대포를 쏘는 공간으로 활용한다. 화성 시설물 전체에서 지하를 사용하는 유일한 시설물이다. 또한, 내부 전체를 사용하는 유일한 시설물이다. 지하 사용이라 한 이유는 성에서는 성안 내탁 위를 기준으로 그 위는 지상, 아래는 지하로 구분하기 때문이다.

 

이런 구조와 기능에는 현안이 불필요하다. 지하를 활용하는 시설물이므로 ‘성 아래’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내려다볼 필요 없이 성 밖 전체를 바로 볼 수 있다. 포혈은 포 쏘는 구멍, 감시하는 구멍, 채광창 역할을 한다. 수많은 포혈이 현안의 역할을 겸하므로 포 쏘는 시간 외에는 언제나 전방을 감시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포루는 치성처럼 돌출되어 있는데 현안이 없다. 이강웅 고건축전문가
포루는 치성처럼 돌출되어 있는데 현안이 없다. 이강웅 고건축전문가

 

포루는 치성으로 분류되지 않는다. 포루는 외형만 같을 뿐 치성과 완전히 다르다. 치성의 제도는 철부성면, 고여성제 두 조건을 모두 충족해야 한다. 포루와 이 조건을 비교해 보자. 첫 번째 ‘철부성면’은 “철(凸) 모양으로 성면에 잇대어 붙어야 한다”이다. 포루는 충족하지 못한다. 이유는 원성에 잇대어 붙인 것이 아니라, 덧붙인 구조이기 때문이다. 다른 이유는, 포루는 치성처럼 돌출된 부분이 잡석으로 차 있지 않고 내부가 비어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 ‘고여성제’는 “높이가 원성과 같아야 한다”이다. 포루는 높이가 원성보다 높은 처마 밑까지이다. 두 조건 중 하나도 충족하지 못해 포루는 치성으로 보지 않는다.

 

둘째, 문 11곳에 현안이 없다. 문 4곳, 수문 2곳, 암문 5곳을 말한다. 문도 치성으로 분류하지 않는다. 문은 앞에 옹성이 있으므로 현안을 설치할 필요가 없다. 수문은 물이 흐르는 곳이라 현안을 설치하지 않았다. 대신 쇠살문을 설치하여 전시에는 모든 홍예 수문을 폐쇄했다. 암문은 위급 시 묻어버리도록 설계가 되어있어 현안이 필요하지 않다. 특히 모든 문은 원성에서 돌출된 형태가 아니라서 현안이 불필요하다. 셋째, 지 3곳, 은구 2곳, 용연 등 6곳이다. 이 시설물은 물과 관련된 시설물로 현안을 설치할 수도, 설치할 필요도 없는 시설물 유형이다.

 

끝으로, 서노대, 동북공심돈, 장대 2곳, 각루 4곳, 서노대, 동북공심돈, 포사 3곳, 성신사, 용도 등 13곳에도 현안이 없다. 이 시설물은 “재성신지내(在城身之內) 시설물”, 즉 성안에 있는 시설물이다. ‘성안’이란 위치와 ‘치성 위’란 위치는 성격이 전혀 다르다. 성안은 자연 원지반이고, 치성 위는 치성 인공지반을 말한다. ‘지상축(地上築)’과 ‘치상축(雉上築)’으로 분류한다. 원지반은 돌출된 성이 아니므로 현안을 설치할 필요가 없다.

 

[서북각루를 감싼 원성에도 특이하게 현안이 있다. 이강웅 고건축전문가
서북각루를 감싼 원성에도 특이하게 현안이 있다. 이강웅 고건축전문가

 

현안을 설치하지 않은 시설물과 그 이유도 살펴봤다. 지금과는 거꾸로 현안을 설치하지 않아야 할 곳에 설치한 특이한 곳도 있다. 모두 원성에 설치한 경우로 위치만 소개한다. 북암문 좌우 원성에 각각 1개씩, 서북각루 전면 원성에 2개가 있다. 그리고 팔달산 정상 서장대를 둘러싼 원성에도 독특한 모양의 현안이 있다. 크기가 크고, 가로로 긴 모양을 하고, 아래위로 설치돼 있다.

 

현안 설치대상 시설물을 살펴보며 느낀 점은 ‘설치할 수 있다면 모든 시설물에 설치하는 시설’이라는 점이다. ‘성안, 통과하는 문, 지하 공간 이용, 물’ 등 설치할 수 없는 곳, 설치할 필요가 없는 곳을 제외하고 모두 설치했기 때문이다. 이 말은 성역 당시 방어 수단으로 현안을 매우 중요시하였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화성성역 100여 년 전 류성룡은 현안은 또 하나의 치성이라고 그 중요성을 강조했다. 현안 설치대상 시설물에서 정조의 전략적 의도를 엿볼 수 있었다. 글·사진=이강웅 고건축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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