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세계와 낮의 시간은 매 하루 똑같이 양분돼 있지만, 그 속에서 우리가 체감하는 시간은 다르게 흘러가는 듯하다. 무의식이 지배하는 밤의 세계, 그 속에서 펼쳐지는 꿈속 세상은 무한정으로 펼쳐나간다.
지난달 13일부터 팔달문화센터 지하 전시장에서 열리고 있는 (사)수원예총 팔달문화센터의 김기태 초대전 ‘그늘의 춤-유영의 시간’은 디지털 페인팅, 회화, 설치, 시 등 여러 형태의 작품을 통해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넘나드는 초현실적인 시도를 선보인다.
어딘가 정착하지 못한 ‘불안’은 창작의 밑거름이 됐다. 작가는 ‘과거의 시간’, ‘꿈의 기억’에서부터 작업을 시작했다. 때로 나쁜 기억에 매몰되기도 했던 그는 놓쳐버린 기억을 포섭하려 했다. 악몽을 기록하는 과정은 현실을 살며 얽힌 불안의 실을 풀어나갔고, 자신의 방식으로 다시 직조하는 과정이 됐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유영’, ‘앙금’, ‘꿈’ 등의 단어들로 인지한 기억에 ‘해파리’, ‘거품’, ‘연꽃’ 등 구체적인 형상을 결합했다. 벨벳이라는 소재는 원경과 근경의 양위성을 제공한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천장까지 닿은 거대한 벨벳 소재의 ‘유영 은하수 3’이 가장 먼저 발걸음을 붙잡는다. 어두운 밤하늘 같은 벨벳 천에 강한 힘을 내뿜는 그림은 어린 시절 접했던 동화 속 도깨비 혹은 꿈에서 봤을 귀신을 떠올리게 만들기도 한다. 신비하면서도 오묘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작품은 물속에 비친 자신에게 홀려 빠지고만 나르키소스의 수선화와 같이 보는 이를 빨려들게 만든다.
밤의 시간에 주목했다는 작가는 꿈을 기억할 때 시간이 선형이 아닌 형태로 기묘하게 섞이는 방식을 활용했다고 말한다. 어둠은 모든 걸 흡수하는 색이지만 벨벳은 빛은 반사하는 소재다. 작가는 “그림자 사이에도 차이가 존재하듯, 기묘한 초현실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줄기를 타고 올라간다/ 한 때는 업혀 있었던 푸른 등을 동경했다/ 이제는 굽은 너의 등을 품는다” (김기태作 ‘유영 7’ 작업노트 중)
전시장에서는 그가 창작 과정에서 함께 구상한 시와 디지털, 회화 매체 작품을 동시에 만날 수 있다. 시와 디지털 페인팅으로 표현된 ‘유영 7’은 거품 속으로 사라지는 인어공주와 같기도 파도 속에 생명력을 내뿜는 동물 같기도, 거대한 식물이 내뿜는 포효 같기도 하다.
작가는 ‘유영’의 이야기를 해파리와 거품 등으로 표현했다. 최소한의 본능만을 품은 채 주어진 환경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표현되는 해파리의 유연함은 누군가를 위해 비워줄 수 있는 공간이자, 함께 효과를 낼 수 있는 공간이자, 여러 삶의 형태를 품을 수 있는 ‘하나의 우주’라고 말한다.
또한 생명력이 넘치는 불순물에서 만들어내는 빈 공간인 거품과 방울은 포화한 상태에서도 새로운 무언가를 담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상상을 틔운다.
불안과 상처, 기억의 파편에 주목했지만, 작가는 자신만의 방법으로 화합을 발견했다. 끝없이 순환하는 원을 떠올리게 하는 ‘유영 4’가 그러하다. 한 번에 활짝 피고 다시 꽃잎이 지는 꽃봉오리의 모습은 생명력을 내뿜는다.
작가는 “과거를 ‘두렵고 새로운 무엇’으로 비유하는 우리의 마음을 비유했다”며 “쉽게 결딴날 수 없는 영역을 시각적으로 풀어내고 싶었다. 전시를 통해 각자만의 상상의 나래를 펼치길 바란다”고 말했다. 전시는 내달 3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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