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경 경기도의회 의장
1980년 5월의 광주는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커다란 나무로 키워낸 희생의 씨앗이었다. 고통 속에서도 용감하게 뿌려진 그 민주주의의 씨앗은 수십년의 시간을 견디고 자라 지금의 울창한 숲을 이뤘다. 자유와 정의를 위한 광주의 희생이 없었다면 오늘날 우리 일상을 지탱하는 민주주의는 허약한 뿌리 위에 흔들리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40여년이 흐른 지난해 12월3일의 밤, 우리는 다시 한번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숲을 위협하는 거센 폭풍과 마주했다. 그러나 그 짧은 폭풍은 아무것도 흔들지 못했다. 마치 1980년 광주의 그날처럼 우리 국민은 단단한 뿌리로 서로를 붙잡고 민주주의 정신을 지켜냈다.
45년 전 광주의 정신은 먼 과거가 아닌 여전히 우리의 오늘 속에 존재한다. 그리고 그 정신을 기억함을 넘어 더 발전시켜 그 어떤 폭풍에도 무너짐이 없도록 손질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책무이기도 하다. 산사태를 막기 위해 경사를 다듬고 나무의 뿌리를 튼튼하게 하듯 대한민국 민주주의 역시 더욱 단단한 기반이 필요하다.
그 핵심은 지방자치·지방분권 강화에 있다. 중앙집권적 그림자에서 벗어나 지역 스스로 빛을 내는 구조로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지방자치는 단순한 행정의 분산이 아닌 삶을 이루는 토대에 대한 결정권을 주민과 지역에 돌려주는 일이다. 강한 나무의 뿌리가 사방으로 자유롭게 뻗는 것처럼 우리의 민주주의 또한 지방자치를 통해 더 넓고, 깊게 뿌리내려야 한다.
특히 지방의회는 민주주의의 숲에서 주민 손에 가장 먼저 닿는 가지이자 지방자치의 줄기를 지탱하는 중심이다. 그러나 지방의회가 놓인 토양은 단단한 뿌리를 내리기에는 여전히 척박하다. 자율적인 조직권, 예산권, 감사권조차 없는 무늬뿐인 인사권 독립 아래 견제·감시의 대상이어야 할 집행 기관인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자립하지 못하고 있다.
이제 지방의회를 위한 새로운 토양을 만들어야 한다. ‘지방의회법’ 제정은 풀뿌리 민주주의의 토양을 바꾸는 일이며 지방의회의 진정한 자율성을 통해 주민의 삶을 바꾸는 진짜 ‘자치’를 실현하는 길이다.
지방의회는 주민들 삶 속에 가장 가까운 민주주의다. 그에 맞는 토양이 주어질 때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더 깊게 뿌리내리고 더 넓게 가지를 뻗어 더 많은 이들의 삶을 품게 될 것이다. 바로 그것이 1980년 5월 광주가 피워낸 민주주의 숲을 더욱 푸르고 깊게 자라나게 하는 길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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