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쟁이’ 시인 권선희…동해 경전(經典)에 바치는 지극한 헌사 [경기작가를 해석하다 ②]

[경기 작가를 해석하다, 평론가 연재 ②-시인 권선희]

(출판/세컨)[경기 작가를 해석하다, 평론가 연재 ②―시인 권선희] ‘곡쟁이’ 시인 권선희…동해 경전(經典)에 바치는 지극한 헌사
고영직 문학평론가

시인 권선희는 ‘곡쟁이’다. 곡쟁이는 상주를 대신해 상주보다 더 서럽게 울어주는 전문 울음꾼이다. 어쩌면 시인의 운명은 곡쟁이와 다를 바 없다. 권선희 시는 1998년 데뷔 이후 줄곧 저 경북 동해안 ‘구룡포’ 바닷가에 사는 사람들의 희로애락의 감정을 담아온 곡쟁이의 곡소리와도 같다.

 

구룡포는 “비린내 나는 포구에 붙어//퇴화를 꿈꾸는//종점”(‘종점다방’) 같은 곳이지만 시인은 그곳에서 사반세기 동안 평생 자신이 무슨 시 쓰는지도 모르는 사람들과 어울리며 펄펄 살아있는 입말(口語)로 ‘구룡포 아리랑’을 썼다. 그렇게 시집 ‘구룡포로 간다’(2007년), ‘꽃마차는 울며 간다’(2017년), ‘푸른 바다 검게 울던 물의 말’(2024년)을 출간했다. 시인은 그들의 이야기를 가끔 받아 적었다고 말한다. 그래서 권선희의 시는 소리 내어 읽어야 제맛이다.

 

권선희는 시집 ‘푸른 바다 검게 울던 물의 말’에서 우리 시대 곡쟁이로서의 진면목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이 시집은 시 쓰는 만신(萬神·무당)이 된 권선희가 쓴 살림의 굿판이라 할 수 있다. 당달봉사 앞에서 “무당보다 더한 팔자가 가엾어 디립다 징만 쳤지. 징에 기대 내가 펑펑 울었지.”(‘징’)라고 술회하는 모습에서 시인의 모습을 연상할 수 있다. 바다에서 숨을 놓은 해녀를 살리기 위해 “가라앉는 삶”을 떠받치는 참돌고래가 그러하듯이 “살아래이/살 거래이”(‘물의 말’)라고 아우성치는 해녀들의 모습은 사람됨이란 무엇인가 깊이 숙고하게 한다. 우리에게는 ‘서로’가 필요하다는 점을 이처럼 감동적으로 역설한 작품을 나는 미처 알지 못한다.

 

곡쟁이로서 권선희가 눈길을 주는 대상은 갯마을에 사는 인간만은 아니었다. “목숨으로 목숨을 연명”(‘생흔화석’)하는 뭇 존재들을 껴안는다. 조풍진, 목포집 덩실이, 덕수씨, 김종팔, 방울이 같은 개 이름 작명을 보라. 또 해파리, 빵게, 북어, 미주꾸리, 고래, 군소, 물미역 등 ‘물것’에 대한 예의를 잊지 않으며 인간중심주의를 간단히 넘는다. 그러므로 권선희의 시와 산문은 동해 경전(經典)에 바치는 지극한 헌사라고 봐야 옳다.

 

시인은 구룡포를 떠나 경기도 가평으로 이주했다. 권선희는 그곳이 바다든 육지든 간에 이곳에 살기 위해 공동체를 지키고 공동체의 파괴에 맞서는 곡쟁이로서의 상상력을 십분 발휘할 것이다. 저 참돌고래에게 배웠듯이 이 땅의 대지(大地)로부터 “고귀한 바닥의 권리”(‘밑줄’)를 배우며 계속 대신 울어줄 것이다. 저 화엄의 바다에서 그러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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