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체육 100년, 다시뛰는 스포츠] 100년史 거울삼아, 다시 백년대계

국민 소득향상으로 생활체육 시대 활짝 열려
성적지상주의 만연… 엘리트체육 변화 시급
사상 첫 민간체육회장 선출로 새로운 출발점
선수보호법 강화·예산지원·자립방안 모색해야

일제 강점기인 1920년 7월에 태동한 한국체육은 어느덧 100주년을 맞이했다. 대한민국 체육은 일제 강점기를 거쳐 6.25 전란 이후 국가재건, 산업화 시대를 거치는 동안 전문체육 위주로 발전해 왔다. 이어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과 2년 뒤 서울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뤄내면서 국내 체육의 트렌드가 ‘보는 체육’에서 ‘즐기는 체육’으로 무게중심이 급격하게 이동했다. 이와 함께 과거 성적지상주의에 매몰돼 있던 운동선수에 대한 인권과 훈련 과정에서의 여러 파생된 문제들이 체육계 밖으로 드러나면서 최근 큰 사회 이슈화가 되고 있다. 또한 대한민국 100주년이 되는 올해 전국 광역 시ㆍ도를 비롯한 시ㆍ군ㆍ구 지방체육회가 자치단체장의 당연직 체육회장에서 체육인들이 직접 손으로 뽑은 민간 체육회장으로 바뀌어 새롭게 출범했다. 이에 경기일보는 새로운 100년을 준비하는 한국체육의 현 주소를 조명해 본다.

■ ‘전문체육 시대’에서 ‘생활체육 시대’로의 변화

1988년 서울올림픽 전까지 대한민국 체육은 엘리트 선수를 육성하는 전문체육이 주를 이룬 가운데 일반 국민을 위한 생활체육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우수한 선수들에게 집중적으로 투자하고, 훈련시켜 국제대회서 메달 획득으로 국위를 선양하는데 집중해왔다. 체육특기자 제도와 국가대표 집단 훈련시설인 태릉선수촌, 체육 전문학교의 육성 등 체육정책은 엘리트 체육이 주를 이뤘다.

하지만 서울올림픽의 성공 개최를 계기로 정부는 국민생활체육진흥종합 프로그램인 ‘호돌이 계획’을 세워 생활체육 활성화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이와 맞물려 1990년대 경제발전에 따라 국민생활 수준이 크게 향상되면서 체육은 특정인을 위한 것이 아닌 국민의 삶의 질을 높여주는 분야로 인식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이후 25년간 활성화된 생활체육은 2016년 국민생활체육회와 대한체육회의 통합으로 전문체육과 생활체육이 함께 성장하는 기틀이 마련됐다. 이를 계기로 생활체육 발전은 더욱 가속화 돼 도시는 물론, 농촌지역 구석구석까지 체육시설이 만들어지고 지난해 말 기준, 문화체육관광부 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민 가운데 66.6%가 주 1회, 52.2%가 주 2회이상 운동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 10명 가운데 7명 가까이가 생활체육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제 체육에 대한 개념도 과거 단순히 신체적 활동이 아닌 ‘복지’의 개념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 ‘세계 톱10’ 그늘에 가려진 한국체육의 어두운 그림자

생활체육이 발전을 거듭할수록 전문 체육의 그늘은 커져만 가고있다. 서울 올림픽 이후 급성장한 전문체육은 불과 몇년 전까지만 해도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등 국제규모 종합대회에서 세계의 스포츠 강국들을 제치고 세계 톱10에 진입할 정도로 급성장 했다. 국제 무대에서 당당히 스포츠 강국으로 성장한 것이다. 하지만 이면에는 운동선수들이 메달을 제조하는 기계로 전락했고, 운동의 즐거움이나 성취감 대신 국가와 소속 팀을 대표한다는 의무와 책임만이 강조됐다. 가장 큰 문제점은 학생선수들의 ‘삶의 질’이었다. 엘리트체육 명문으로 꼽히는 학교 중 상당수가 ‘학업에 다소 소홀하더라도 운동만 잘하면 된다’는 식으로 가르쳤고, 또 인성보다 성과를 강조하다 보니 일부 지도자들과 또래의 선배 선수들에 의한 폭언 및 폭력, 체벌 등은 일상화 되기도 했다.

시대가 변하면서 체육계의 고질병처럼 여겨졌던 행태들이 하나 둘 사회 문제가 되기 시작했다. 특히 최근 불거진 국내 체육계 비리와 잘못된 관행, 쇼트트랙 선수 심석희에 대한 대표팀 코치의 성폭력 등으로 폭행사건, ‘스포츠 미투’(나도 당했다)가 연이어 터지면서 전문체육은 마치 ‘비리의 온상’으로 비춰지기 시작했다. 지난 6월 가혹행위에 시달려온 한 젊은 운동선수가 스스로 삶을 정리하는 안타까운 사건까지 발생하면서 체육계의 끊이지 않는 병폐에 국민들로 부터 외면받은 대한민국 전문체육은 더이상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김희진 인권침해예방활동연구소 대표는 “철인3종 선수의 인권 침해 사건과 지난해 드러난 쇼트트랙 대표선수 성폭력 사태 등이 전혀 다르지 않다”며 “전문체육의 문제점과 병폐가 불거져 이에 따른 다양한 대안들이 제시됐지만, 유관 기관들이 적극 대처하지 못해 유사 피해사례가 계속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대표는 “전문체육 병폐를 방지하기 위해선 현장을 감시할 모니터링단을 지속적으로 가동시켜 각 팀들이 법과 제도를 제대로 잘 지키고 있는지, 시정조치가 즉시 가능한지 등의 제3자적인 감시 단체가 설립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타인에 대한 존중과 인권 의식이 학습돼 메달이 전부가 아닌, 즐기고 운동하며 성과를 낼 수 있는 선수들이 넘쳐나야 한다”고 밝혔다.

■ ‘기대 반 우려 반’ 속 출범한 민선 체육회장 시대

‘지자체장의 체육단체장 겸직 금지’가 핵심인 국민체육진흥법 개정 법률이 지난 1월 16일부터 시행됨에 따라 경기도를 비롯한 전국 광역 시ㆍ도 체육회와 시ㆍ군ㆍ구 기초체육회가 사상 첫 민간 체육회장을 선출했다. 민간 체육회장 제도는 당초 정치로부터 체육을 분리시킨다는 방침이었지만, 오히려 체육을 더 정치 예속화 하는 결과를 낳았다. 대다수 지방체육회 수장이 소위 자치단체장과 코드가 맞는 측근들이 선출돼 외형상으로 큰 잡음은 없지만, 결과적으로 자치단체장 측근이다보니 예산을 지원하는 지방자치단체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반면, 경기도체육회 처럼 자치단체장과 코드가 다른 인사가 체육회장에 선출된 경우, 연간 예산의 대부분을 지원하는 자치단체와 원활한 협조가 이뤄지지 않으면서 사사건건 대립할 수 밖에 없는 상황도 빚어지고 있다.

특히, 주요 간부에 대한 인사와 직장운동부 운영, 체육시설의 관리 운영, 사업시행 등 어느 것 하나 자치단체와 협의없이 민선 회장이라고 해서 마음대로 집행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올해 예산의 경우 이미 관선 체육회장 재임시절 책정이라서 큰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당장 하반기부터 시작될 내년도 예산 책정에서 자치단체장이 체육회장을 겸직할 때 만큼의 예산을 확보하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다. 이에 이원성 경기도체육회장이 주도가 돼 전국 지방체육회는 대한체육회와 같은 법정법인화를 통해 예산 지원을 보장받기 위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역시 지방체육회의 법정법인화 관련법 개정을 준비 중이지만, 정부는 지방체육회의 법정법인화에 난색을 표하고 있어 상황은 녹록지 않다.

지방자치단체의 예산심의 권한을 쥔 지방의회의 문턱을 넘는 것 또한 쉽지 않다. 지방의회가 민선 체제 속에서 과거처럼 당장 주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SOC 사업이나 복지 분야 예산 대신 체육분야에 많은 예산을 지원하겠느냐 하는 우려다. 경기도체육회의 경우 이미 민선 체육회장의 업무보고를 놓고 의회와 한바탕 대립하는 등 불편한 관계여서 더욱 그러하다. 이에 체육인들은 당초 취지대로 지방체육회의 정치적 독립을 위해서는 예산 지원과 운영의 자율권을 최대한 보장하고, 지방체육회 역시 자치단체, 의회 등과 원만하게 협조하면서 자립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여론이다.

김경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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