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문재인 지방분권이 헛구호에 그치지 않으려면

문재인 정부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지방에 권한과 예산을 주는 지방분권을 약속했다. 지방분권을 시대적 소명이라고까지 밝히며 의지를 다졌다. 지방분권이야말로 진정한 지방자치제의 완성이다. 그러나 현실은 아직도 멀다. 중앙정부의 인식은 과거에 머물러 있는 듯하다. 지방을 무시하기 일쑤고, 협의보다 통보에 익숙하다.

대통령의 지방분권 의지와 달리 중앙정부가 지방정부를 대하는 태도는 고압적이다.

1990년대 지방과 상의 없이 신도시 개발 계획을 발표하는 일은 지금도 다반사다. 신도시 개발은 민감한 사안이긴 하다. 개발정보가 먼저 샜을 때 후 폭풍은 걷잡을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지도 펴 놓고 선 긋고 점 찍듯이 추진되는 대형 개발사업에 대해 일선 시군은 불만의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다. 지역현실은 누구보다 지역이 잘 안다. 지역을 무시하고 사업을 진행했을 때 탈이 나기도 한다.

이제 정부사업에 시민들도 가만히 두고 보고만 있는 시대는 지났다. 정부는 지난 24일 광명ㆍ시흥 신도시 조성 계획을 발표했다. 이들 지역 시민단체들은 지역 의견 수렴절차 없는 일방적인 발표를 즉각 비난했다.

중앙정부가 일선 지자체 건의를 처리하는 태도는 더 가관이다. 민선 7기 경기지역 기초지방자치단체들은 지속적으로 중앙 정부에 지역현안 해소 등을 건의했다. 지역에서는 꼭 필요하고 개선돼야 할 내용이 담겼다.

경기일보가 경기도시장군수협의회 등을 통해 도내 시군이 중앙정부에 건의한 내용을 점검한 결과는 충격적이다. 민선 7기 출범부터 지난해까지 도내 시군은 94건의 지역현안을 중앙정부에 건의했는데 이중 68건이나 미회신 처리됐다. 긍정적인 수용 답변은 5건뿐이다. 나머지는 11건은 불수용, 중장기 검토는 5건 등이다. 차라리 불수용이라는 의사 표현은 명확해서 더 낫다. 미회신 68건은 무엇인가. 시ㆍ군 건의를 수용하겠다는 것인지, 반영 불가능하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도내 일선 시군 건의사항은 지금도 행안부, 국토부 어느 부서 컴퓨터 속 폴더에 잠을 자고 있는지, 각 부서 윗선까지 제대로 보고는 됐는지 조차도 알 길이 없다. 지금도 중앙정부에 문의하면 ‘검토 중’이라는 형식적인 답변만 돌아올 뿐이다.

지방은 중앙정부 도움을 받을 일이 많다. 재정 능력이 떨어지는 우리나라 지방자치의 현실상 중앙 정부가 지자체를 도와주지 않으면 운영조차 안 되는 구조다. 재정을 중앙에서 틀어줘고 있다 보니 지자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은 제한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중앙정부가 추진한 사업 등을 지자체가 떠안을 경우 지역은 더 답답할 수밖에 없다.

1977년 조성된 반월시화국가산업단지의 노후화 문제는 고질적인 현안이다. 중앙정부가 조성했으나 노후화에 따른 보수 비용은 고스란히 지자체 몫이 됐다. 산업입지 개발 지침에 ‘준공산단을 지원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조항 때문에 국비를 받을 길이 막혔다. 이를 개선해 달라고 중앙정부에 건의해도 회신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대통령의 지방분권 의지를 의심하지는 않는다. 중앙정부가 현실적으로 지방의 건의를 모두 받아 줄 수 없다는 것도 안다. 다만 현재 중앙정부가 지방을 대하는 태도부터 개선해야 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이선호 지역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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